[정유옹의 도서비평] 동서양 의학의 원류를 찾아서
상태바
[정유옹의 도서비평] 동서양 의학의 원류를 찾아서
  • 승인 2015.10.15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유옹

정유옹

mjmedi@http://


도서 비평 | 「의학 오디세이」

시드니의 한 박물관에서 18세기 오세아니아 정복자들에 관한 전시회가 열렸다. 호주 대륙에 정착하기 위해 유럽에서부터 배에 싣고 온 물건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유리 부항이었다.

앤 루니 著
최석진 譯
돋을새김 刊

유럽의 정복자들은 장기간의 항해와 여행 중 꼭 필요한 의료기를 챙겼는데 그 중의 하나가 유리 부항이었다고 한다.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 병원에 가서 보면 부항을 이용하여 사혈하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한의원에서 시술하는 치료 방법 중의 하나인 부항술이 서양의 의학과 인도의 전통의학에서도 쓰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학자이자 의사인 헤르만 보어하브는 죽기 직전 한 권의 책을 밀봉하여 남겼다. 그가 죽고 나서 경매가 이루어지고 비싼 가격에 낙찰 받은 사람이 책을 열어 보았다. 그 책에는 단 한 줄만이 적혀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백지였다.

‘머리는 차게 하고 배와 다리는 따뜻하게 하라! 그러면 의사를 찾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바로 우리 한의학의 치료 원칙인 ‘두한족열(頭寒足熱)’인 것이다.

혹시 동서양 의학의 기원은 같은 것이 아닐까?
동서양 의학의 역사에 대해 쉽게 소개하는 책이 있다. 사진과 그림 그리고 풍부한 에피소드로 동서양 의학의 역사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나간 책이 바로 「의학 오디세이」이다.

저자는 「수학 오디세이」를 출간하여 이미 명성을 떨쳤던 영국의 앤 루니이다. 양의사도 아니고 게다가 서양 사람이 동서양 의학의 역사를 망라하여 썼다는 것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대중적인 의학 역사책이기에 읽어보았다.

역시나 책의 겉표지부터 눈에 거슬린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삐딱하게 의자에 기댄 환자의 맥을 청나라 시대 변발을 한 중의사가 두 손으로 긴장하며 진맥을 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꽃단장한 젊은 귀부인을 공손하게 진료하는 중의사의 의상과 얼굴에서 그 시대 의사의 계급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럽에서 18세기 이전까지 2000년간 지배하던 서양 의학의 원리는 4체액설이었다고 한다. 이는 정신기혈(精神氣血)을 기본으로 했던 동양의학의 원리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환자의 진액을 잘 돌게 환경을 만들어 주면 병이 낫는다는 이론이다.

열이 있고 건조한 환자는 찬물에서 샤워를 하도록 하고, 열이 있고 습한 환자는 사혈을 해준다. 차고 건조한 무기력 환자는 붉은 고기와 적포도주를 줘서 치료하고, 차고 습한 사람은 맵고 뜨거운 음식으로 치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동양의학에서 병의 원인을 허(虛)와 실(實), 열(熱)과 한(寒) 그리고 조(燥)와 습(濕)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서양의학에서 18세기경부터 마취약이 개발되고 항생제를 투여하기 시작하면서 과감하게 수술을 하게 된다. 저자가 에피소드로 전하는 것처럼 서양의학의 발전 과정 속에는 많은 착오가 있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시신이나 피가 병에 좋다고 하여 단두대에서 사형당하는 죄수 밑에서 의사들이 피를 채취한다든지, 수술한 후에 출혈을 막기 위해 혈관을 불로 지진다든지, 피곤한 사람들의 머리를 뚫어주면 피로가 풀린다하여 머리의 백회 부위를 동전 크기로 뚫어준다든지….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현 시대를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만 하다.

문제점은 서양의학의 흐름에 동양의학을 맞추다 보니 동양의학은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분위기로 표현한 것이다.

한의학에서 음양오행의 이론으로 인체의 한열허실을 조율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질환을 치료하는 모습을 발전되지 못한 과거 의학의 형태로 치부하는 것이다. 마치 지금 한국의 양의사들이 한의사들은 400여 년 전 「동의보감」만을 바탕으로 하여 진료한다고 하면서 ‘한방무당’이라고 폄하하여 부르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동양과 서양에서 학문 발전의 원류로서의 종교와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의학의 발전 방향도 다르게 된 것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동서양 의학의 기원은 비슷할 지라도 서양에서는 보다 세부적이고 절대적인 지금의 서양의학이 나오게 된 것이고, 동양에서는 유·불·선 종교와 철학에 밑바탕을 두고 보다 전체적이고 상대적인 지금의 동양의학으로 발전된 것을 저자는 모르고 있다.

양의사의 눈으로 보면 침과 한약을 이용하는 한의학은 중세 유럽에서 부항을 이용하여 피를 빼고 산호가루와 아편초로 치료했던 자신들의 과거 의학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중보건의사 시절 함께 근무했던 양의사들이 한의학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었던 것에 놀랐었다. 침은 단순히 발목 삔 사람들만 치료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고, 한약은 보약의 개념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양의사들에게 한의학의 원리와 효과를 알려주는데 3년의 세월을 보냈던 것 같다.

대한의사협회에서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을 막기 위해 양의사들의 한의대 출강금지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것은 양의사들이 이 책의 저자처럼 한의학의 역사와 철학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미래 의학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한의사들을 양방의대 교수로 임명해서 한의학을 연구하고 한의학에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통합의학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값 1만6000원> 

정유옹 / 사암한방의료봉사단,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