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옹의 도서비평] 배가 산으로 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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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의 도서비평] 배가 산으로 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승인 2015.07.0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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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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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비평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 편1 규슈」
 
최근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로 노역했었던 하시마섬을 포함한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산업화 시설이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다수의 우리 국민들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되어 침략전쟁에 희생되었던 사실을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이 시설이 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유홍준 著
창비 刊

이는 과거 우리민족이 겪었던 역사적인 아픔을 숨기고 일본의 선진적인 산업화 시설로서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일본의 뻔뻔함에 분개했기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 편1 규슈」의 저자 유홍준은 이 책의 일본 현지 출판기념 강연회에서 “일본 문화가 아무리 한반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도 그들의 문화를 온연한 일본문화로 인정해 줘야 한다”(한국경제 2015년 3월 12일 인용)라며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문화가 전해진 것은 맞지만 일본에서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당시 독도와 과거사 문제로 한국에서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높아지고, 일본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하시마섬을 추진하고 있을 시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어서 한국과 일본의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한 권 정도는 안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저자 유홍준은 미술사학계에서 독보적이다.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처음으로 발간되면서 그의 책에 소개된 문화유적을 따라 여행하는 것이 유행이 되고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그러던 그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국의 사학자 입에서 일본의 문화를 옹호하는 말이 나오다니?

예를 들어 우리 한의학이 중국에서 전래되었으나, 우리 민족의 우수한 창의력으로 중국과는 다르게 사상체질의학, 사암침법 등을 창조하며 중국과는 다르게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고 한국의 한의학 역사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렇지만 중국의 의학사를 전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의 한의학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사상의학이나 사암침법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이렇듯이 학자마다 자신의 학문적 신념에 따라 사실을 해석하고 주장하는 것이 마땅한데, 과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무수한 한국의 전통 문화 유산을 전 국민에게 알렸던 유홍준의 일본 문화 언급은 어색하기만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원 전 조선 반도에서 살았던 도래인들이 일본에서 원주민을 몰아내고 지금의 일본의 민족이 되었고 벼농사를 시작하여 새로운 문명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한국식 민무늬 토기가 발견되는 것과 벼농사에 사용된 기구들이 한국의 것과 비슷한 것으로 증명하고 있다. 규슈지방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백제 무령왕이 규슈 가카라시마에서 태어난 것과 일본이 백제를 돕기 위해 2만7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백촌강 전투에 나선 것 그리고 전투에 패하고 일본과 백제의 패전 세력들이 일본의 다자이후에 수성과 대야성을 백제식으로 쌓은 것으로 보아, 외교적으로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 오국간의 관계 속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원전 한반도의 격변기와 삼국시대 많은 이주민들이 일본에서 정착하면서 한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꽃 피우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일본의 도래인 이주설, 그리고 백제의 문화 일본 전래설 등의 증거가 되는 유적들을 사진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기까지 하다.

그래도 뭔가 찜찜하다. 만약 한 친구가 있다고 치자. 그 친구에게 밥도 사주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같이 잘 지냈다. 그러나 어느 날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날 폭행하고 지금도 사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친구가 시켜서 한 것이라는 등, 날 위해서 그랬다는 등의 변명만 늘어놓기만 한다. 그 친구와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혹시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나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사과 한다면 모를까 나는 용서할 수 없다. 용서 없이 관계회복은 불가능하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과거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임나일본부설 등의 역사적 왜곡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일제강점기 시절 자행한 위안부문제, 조선인 강제노역자 문제 등에서 해결의 적극성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과거사에 있어서 일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 있는 후속조치가 있어야만 우리는 일본을 용서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희망하는 것처럼 새 시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와중에 과거는 과거이고 사실은 사실이라고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로 인정하는 유홍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을 돌며 한국의 발자취가 있는 곳을 답사하고 그 결과물을 전 4권으로 방대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유홍준의 역할은 다 했다. 책을 읽어보면서 저자의 학문적 깊이와 답사 내용의 꼼꼼함에 놀라면서 찬사를 보낸다.

책의 바탕이 되는 소재가 일본의 문화유적 중에서 직간접적으로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문화유산을 발굴하는 것이었다면 처음의 목적에 충실하였으면 한다. 일본 문화의 우수성을 우리에게 알리는 것은 일본의 미술사학자들의 몫이다. <1만6500원> 

정유옹 / 사암은성한의원,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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