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옹의 도서비평] 한의사들에게 진단기기를 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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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의 도서비평] 한의사들에게 진단기기를 許하라!
  • 승인 2015.02.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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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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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정초부터 양의사들의 ‘한의학 죽이기’가 한창이다. 양의사들은 자신의 명칭부터 기분 나쁜 모양이다. 양의사를 의사로 양의학을 의학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한 상태이다.

그러나 한의사들을 한방의사로, 한의학을 한방으로 자기들 맘대로 부르고 있다. 이렇게 되니 ‘양한방’을 ‘의한방’으로 말도 안 되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도대체 이름 앞에 ‘양(洋)’ 붙이는 것을 양의사들은 왜 싫어할까?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의 저자 김진송은 개항이후 현대화를 뜻하는 접두어를 붙이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시초가 ‘양’이라고 하였다.

김진송 著
현실문화연구 刊
양복, 양동이, 양은, 양화, 양장, 양잿물, 양옥, 양철, 양말, 양식 등 ‘양’이란 말을 앞에 붙여 개항 이후 들어온 많은 서양문물을 전통의 것과 구별하였다.

이후 1910년대에는 신사고, 신문물, 신학문, 신여성, 신생활, 신문화 등과 같이 ‘신(新)’ 이란 말을 앞머리에 붙여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유행은 신흥 예술, 신흥 사상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흥’으로 변하였다. 1930년대에는 ‘모던’이란 말도 유행하였다고 한다.

이렇듯이 우리 것보다는 일제의 것, 서양의 것, 현대의 것, 새로운 것이란 뜻으로 접두사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고 그중의 하나가 ‘양(洋)’ 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양’이란 말은 서양적이라는 것이고 이는 ‘서양=산업화=도시화=발전된 것=훌륭한 것’ 이란 뜻이어서, ‘동양=비산업적=농촌의=저개발=나쁜 것’이라는 것과 대비되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고 국민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서양적이라는 의미가 점차 비주체적이고 천박하고 나쁜 것이라고 인식되면서, ‘민족적=전통적=주체적=소중한=좋은 것’과 대비되기 때문에 양의사들은 ‘양(洋)’을 머리에서 때어 버리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근현대 미술사를 연구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등과 관련된 자료를 바탕으로 근현대의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학 또한 사회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중간 중간 자료가 나온다. 1930년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X선이 도입되어 병원에서 이를 광고하는 사진부터 여자의 육감적인 그림을 이용하여 양약을 판매하는 광고까지 현대성을 보여주는 자료로 제시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제강점기 현대화는 식민지 정책에 입각해서 실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제는 물자와 자원을 수탈하고 식민지 백성들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현대화 정책만 실행하였다.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인들을 위한 술집과 위안부를 많이 만들었지만 대중들이 많이 모일 수 있기 때문에 댄스홀 하나 허용하지 않았다. 과연 조선의 근현대화를 일본인들이 주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한의학은 일제 강점기에 한방이라고 치부되었다. 한방은 학문보다는 기술을 뜻하는 말로 한의학을 낮추어 부르는 용어이다. 한의사는 5000년 역사의 의사에서 일제 강점기에 의생으로 격하되었다. 조선후기 대한의사협회는 한의사들의 조직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양의사만을 의사로 인정하면서 한의사 직능의 위치는 위태위태하였다.

그렇지만 「식민지 시기 일반인의 한의학 인식과 의약 이용」이란 논문에서 이꽃메는 1940년 충남 당진의 한 마을에서 의료기관 이용 횟수를 보면 한의를 이용한 경우가 200건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약초를 캐어 먹거나 방임하였고 다음 순으로 양의를 이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일제의 한의학 말살정책에도 한의약은 대중들이 선호하는 의료 수단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양의사들은 자신들의 의료기술을 양의학이라고 칭하고 자신들을 양의사라고 광고하여 한의와 구별하려고 노력하였다.

‘양의학’이란 단어의 역사는 거의 100여년이 다되어 가는 것이다. 양의사 100주년 기념식을 해도 모자를 판에 ‘양’을 떼어 버리고 자신들만이 의료인이라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심지어 전 ‘양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사람은 한의사 제도가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역사를 오도하는 발언까지 SNS에서 서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조선의 일본인들과 상류층 귀족들을 위하여 양의사만을 인정하였고, 식민지 백성들의 의료 근간이었고 조선 독립 운동의 선봉이자 자금줄이었던 한의사들을 말살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의사들의 노력과 민족주의적인 대중들의 사랑으로 한의학은 명맥을 이어 나갔고, 현재 한의학은 전 세계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양의학을 뛰어 넘는 의학으로 발돋움하려고 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 X-ray를 비롯한 진단기기를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려고 하였으나 양의사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서 멈춘다면 현대화, 선진화, 산업화, 세계화에 역행하는 행동이었다고 역사에서 평가할 것임을 정부 관계자들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값 1만5000원>

정유옹 /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사암은성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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