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60)-「人生必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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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60)-「人生必知」
  • 승인 2012.11.0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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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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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묵은 伏暑症, 풀리지 않는 울분

 

「인생필지」

3.1 만세운동이 일어나던 해인 1919년에 新明書林에서 발행한 가정의학서이다. 서발은 없으며, 표지 이면에 출판사에 기발행한 서적을 광고하는 ‘模範的書籍紹介’가 실려 있는데, 이 책을 비롯하여 14종의 통속서가 수재되어 있다.

한편 권미에는 日鮮支那年代對照表가 실려 있는데, 일본, 조선, 지나, 干支의 순으로 연도별 연호, 연수를 대조하여 표로 수록해 놓았다. 또 뒤표지에도 역시 출판사인 신명서림의 대표서와 광고 문구를 도해하여 실려 있는데, 일설에 이렇듯 줄글로 적지 않고 문장을 단구로 분해하여 정렬시켜 보는 것은 일본사람들의 습성이자 독서습관이라고 한다.

저작 겸 발행인으로 金在悳이란 이름이 올라 있는데, 아마도 대중의약서로 꾸며 출판사에서 급조해서 발매한 경우라서 출판사주의 이름으로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 첫줄에도 역시 ‘實地試驗 人生必知 附現行書式’이라고 쓴 서명과 함께 ‘김재덕저’라고 밝혀져 있다.

하지만 저자에 대해서보다는 1934년에 펴낸 또 다른 통속서 「名字自解吉凶秘訣」이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이름자를 지을 때 邵雍의 皇極策數에 등장하는 역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인간사 길흉화복과 이름과의 관계를 설명한 역술서이다.
다루고 있는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이 책 「인생필지」 역시 사회가 불안하고 민중이 핍박을 받았던 시기에 예측할 수 없는 앞날과 건강에 대한 우려 때문에 당대 대중들로부터 폭 넓은 호응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예상을 입증하듯이 이 책의 판권부에는 1919년 1월 11일에 초판을 발행하였는데, 불과 10일도 지나지 않은 같은 달 20일에 재판을 인쇄하고 25일에 발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엄청난 반응이 있었나보다.
그래서인지 겉표지 우측에는 ‘訂正增補再版發行’이라고 특필해 놓았으며, 또 서제 앞에는 ‘實地應用’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이 말이 본문과 판심에는 ‘實地試驗’이라고 되어 있어 출판사 측에서 그 실용성을 강조하고자 매우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명이 무색하게도 임상각과별로 세분된 의약적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內, 外, 婦人, 小兒科로부터 眼科, 鼻科, 耳科, 齒科, 口腔科, 그리고 手足科, 風科, 皮膚科, 咽喉科, 獸蟲의 傷科, 腫脹科, 六畜科 등 질병군별로 구분되어 있으나 양방이든 한방이든 실제 의료 분류체계와는 무관하게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대중들이 알아보기 쉽게 임의로 구분한 분류방식으로 여겨진다.

그 다음으로 책의 후반부에는 家內의 要訣, 民籍에 관한 書式, 營業에 관한 서식, 埋火葬墳墓에 관한 서식, 流失盜難에 관한 서식 등 각종 서식과 가정상식류가 배치되어 있다.
본문 첫 항목은 ‘積年伏暑’인데 다음과 같은 치료법이 적혀 있다. “여러 해된 暑症에는 청호 3돈쭝과 향유, 익모초 각각 2돈쭝을 다려서 먹되 한 10첩만 쓰면 신효”(필자윤문). 1910년 한일합병이 된 지 어언 10년 세월이니 그간에 쌓인 울증이 伏熱처럼 느껴질 만하다.

한여름 더위 먹은 것도 해를 넘겨가며 말썽인데 해마다 누적된 울분이 오죽했으랴! 서증이야 어떻게든 청호, 향유, 익모초로 淸熱시켜 10첩 만에 나았을 터이지만 10년 너머 묵은 원한을 약초 몇 가지로 해소시키기에는 애당초 턱없이 무리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용은 다소 평이하지만 이러한 부류의 통속의서들이 왜 이다지도 대단한 호응을 보였냐하는 것은 여러 가지 척도에서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기존의 한문투에서 점차 벗어나 한글 위주 혹은 한글로 된 언해나 설명을 붙여 쉽게 풀이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제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기존 식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일상지식과 질병대처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점이 대중의 구미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리라.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 495회에 소개한 「人生必要」(건강한 삶을 위한 필수지식, 2011년 6월 30일자)는 가정에서 손수 채록한 내용으로 비교해 볼 만하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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