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63)-「(언해)治腫方」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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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63)-「(언해)治腫方」③
  • 승인 2012.11.2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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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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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 시대 外科術의 진보

 

「치종방」(임언국유방)

임언국은 이 책에서 기존에 13종, 16종, 36종 등으로 분류했던 종기의 종류를 진행의 緩急에 따라 火丁(疔)·石丁·水丁·麻丁·縷丁 5가지로 과감하게 통합하고, 수만 명의 종기를 치료하면서 얻어진 경험을 토대로 각종 종창의 성질과 치료법을 나누어 설명하였다. 특히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하는 누정이라는 종창은 기존에 없던 것으로 자신이 직접 임상에서 경험하고 관찰한 결과에 의거하여 새로 명명한 별종이어서 더욱 주목해야만 한다.

임언국의 당대에도 그의 의술은 꽤나 독특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듯, 조선시대 野史集인 「寒臯觀外史」에서는 嶺南士人 李耳라는 사람이 역시 치종술로 이름이 알려져 임언국의 예에 따라 한양에 불러들여 녹봉을 주고 治腫廳에서 일하게 하였다고 적혀 있다.

임상가로서 그는 과감한 切開術 뿐 아니라, 다른 의원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초기진료의 중요성을 간파함으로써 독창적인 면모를 드러내었다. 특히, 背腫에 관해서 “초기에 침과 약을 쓰지 않았는데, 저절로 안팎이 모두 곪고 통증이 가시는 경우에는 치료하기가 아주 쉽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막 곪았을 때에 죽고 이미 곪아버린 후에는 죽지 않는다. 때문에 세속에서 종기를 치료하는 자로 초기에 치료하지 않고 곪아버린 이후에 치료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이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한편 이 책에는 민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응용했기 때문에, 일반 의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생경한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의 한 예로서 약재의 용량을 표기하는데 있어 ‘分’으로 기재하지 않고 ‘目’으로 기재하고 있다. 푼이라는 도량형 단위보다는 ‘눈금’을 의미하는 ‘目’자로 표기한 것은 민간에서 입말로 사용하는 언어를 그대로 문장으로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염탕침인법에는 여러 가지 용기를 나타내는 鉢, 盆, 小槽, 長缸, 大錚盤, 大所羅, 揮項, 東海 등의 명칭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일반의서에 잘 등장하지 않는 것들일 뿐만 아니라 계량도구는 아니어서 민간에서 흔히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을 그대로 기재한 경우이다. 특히 ‘큰 쟁반[大錚盤]’ ‘큰 소래기[大所羅]’ ‘휘항(揮項)’ ‘동이[東海]’는 모두 한국식 한자표기들이다. ‘大所羅’의 ‘所羅’는 세조대 「구급방」의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소래기’의 조선시대 발음인 ‘소라’를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揮項은 이익이 「星湖僿說」에서 “속명으로 휘항이란 것이 있는데, 큰 것은 어깨와 등도 다 덮을 수 있고, 작은 것은 다만 뒤통수와 목만을 두르게 되었다. 겉은 비단으로 만들고 안과 선은 모두 털을 댔으며, 앞으로 늘어진 양쪽 귀는 뒤로 젖혀서 뒤통수에다 마주 매게 되어있다.”고 했으며, ‘東海’는 ‘동이’의 조선시대 때의 발음인 ‘동해’를 음차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일제 강점기 한국의학사를 연구한 학자 三木榮조차 ‘丹知’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여 “丹沙·硫化汞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것을 綿에 넣어서 종처 위에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불을 붙인다”고 牽强附會하였다. ‘丹知’는 우리말 ‘단지’를 음차한 것으로 임언국은 종기가 생긴 곳에서 피고름을 빼낼 때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우리 의학을 우리가 직접 연구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국내에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다행이도 해외 유수 도서관에 전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三木榮은 「朝鮮醫學史及疾病史」에서 임언국의 治腫學에 대해 明 薛己의 「外科樞要」나 陳實功의 「外科正宗」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고 언급하였다. 이보다 앞서 18세기 일본 고증의학파의 거두인 丹波元簡이 「치종지남」을 평하며,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기이한 책”이라고 평한 사실이 임언국의 치종방에 대한 평가가 단순히 민족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고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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