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40) -「藥徵」②
상태바
고의서산책(540) -「藥徵」②
  • 승인 2012.06.07 1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http://


인삼논변 뒤에 숨은 경제논리

 

「약징」

이 책이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이유는 인삼에 대한 논변 때문이다. 상권에서 석고, 활석, 망초, 감초, 황기에 이어 6번째로 등장하는 인삼조에 많은 분량의 지면을 할애하여 그 효능에 대하여 논하였는데, 첫머리에 “心下痞硬과 支結을 치료한다”고 단언하였다. 아울러 “不食, 嘔吐, 喜唾, 心痛, 腹痛, 煩悸 등의 증상을 두루 치료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大補元氣, 止渴生津, 調榮養衛’와 같은 약효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考徵에서는 傷寒金匱에 등장하는 木防己湯, 人蔘湯, 桂枝人蔘湯 등 수 많은 처방에서 인삼이 응용된 사례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인삼, 황련, 복령 이 3가지 약은 그 공효가 대동소이하다. 인삼은 심하가 비경하면서 두근거리는 증상을 다스리고 황련은 心中이 번잡하면서 두근거리는 증상을, 복령은 근육이 움찔거리고 떨리면서 두근거리는 증상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나아가 白虎加人蔘湯, 四逆加人蔘湯증에서 心下의 증상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유로 오히려 인삼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辨誤에서도 “인삼이 허증을 보한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이 말이 한번 나온 이후 천년이 넘는 동안 두루 해독을 끼쳤다”고 극언하였다. 그는 元氣란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부여받은 先天之氣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역대 본초서에 기록한 효능 때문에 후세 학자들이 모두 미혹되었다고 공박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穀肉果菜로 養精한다는 것은 「내경」에서 말한 것이니 신빙할 수 있지만 草根木皮로 원기를 기른다는 말은 道家에서 延命長壽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 지어낸 소리일 뿐이라고 부정하였다. 또 李東垣이 亡血證에 인삼을 쓴 것도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 張仲景이 원기를 기른다고 말한 적이 없으므로 후세의 말을 따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品考는 인삼의 품종을 논변한 항목인데, 상당에서 나는 것이 옛날부터 상품이지만 이젠 나지 않고 조선에서도 적게 나온다고 하면서, 조선에서 수입된 것은 맛이 달기 때문에 원래의 성질과 달라 心下痞硬에 써보면 효과가 없었다고 적고 있다. 아울러 시험 삼아 조선에서 채취한 인삼의 싹을 일본에다 심었더니 그 맛이 썼으며, 일본 각지에서 산출된 것은 모두 심하비경에 크게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일본삼도 三椏五葉을 갖추고 있어서 형상이 조선산과 동일하다고 덧붙였다.

이상의 논변에서 그는 조선인삼의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원기를 보한다는 효능을 부정하는 한편 일본산의 효능도 조선인삼에 못지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까지 극언해야 하는 이유가 무얼까? 그는 漢代에 사용한 인삼의 효능에 대한 기록만을 신빙하여 上黨蔘이 멸종되고 고려삼이 통용된 이후 중국에서 여러 의가와 본초학자들이 징험한 사실을 깡그리 부정하고 있다.

적어도 당대 이후엔 조선삼만이 사용되었다고 볼 때 오히려 후대 본초서에 기록한 원기를 보한다는 설명이 조선삼의 효능임이 분명하다. 원기를 선천기로만 해석하는 것 역시 저자의 편협한 생각일 뿐이다. 일본삼이 조선삼과 형상이 같은 것은 종자가 같기 때문이겠지만 원기를 보하지 않는다고 강변한 것은 역시 풍토가 달라 약효가 동등하지 않다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1700년대 일본 열도에선 한류열풍으로 인삼 수요가 급등해 위품을 제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으며, 家産을 탕진해서라도 인삼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은이 조선으로 대량 유입되어 도쿠가와 막부는 막대한 재정지출을 막기 위해 고심하였고, 급기야 조선삼을 이식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당시 정황은 조선통신사와 나눈 의학문답류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 기록된 인삼 효능에 대한 논변은 이러한 일본 국내 사정과 인삼구입에 유출되는 막대한 국부를 지켜보려는 보이지 않는 의도를 담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인삼을 두고 한중일 3국을 무대로 전개되었던 약효논변과 품종 변위 문제는 생각보다도 긴 역사와 치열했던 무역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갖고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