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43) -「救荒指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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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43) -「救荒指南」
  • 승인 2012.06.2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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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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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굶주림, 그 아픈 기억

 

「구황지남」

구황에 대한 정책[荒政]은 근세에 이르기까지 어느 왕조를 막론하고 반드시 우선 해결해야할 숙제와 같은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론 굶주린 백성을 위해 仁君이 베푸는 德治의 표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책은 이러한 면모와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바로 일본제국의 침략전쟁이 막바지에 달했던 치열했던 상황에서 전쟁 물자를 공급하느라 궁핍이 극에 달했던 조선 사람들에게 강요되었던 허울 좋은 배려에서 나온 책이라는 점에서 이다. 본문에 앞서 서책의 첫머리에는 ‘有備無患’, ‘益世濟民’이라고 쓴 휘호가 실려 있다. 본래의 의미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뜻이지만, 책을 펴낸 의도가 숨어 있는 글귀이니 무심하게 보아 넘길 수 없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이름으로 실린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現下 비상시국을 맞이한 즈음에 식량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戰勝의 요결은 전선 뒤의 국민들이 전장의 용사들과 마찬가지로 한마음으로 전승물자를 增産하는데 매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 (운운)” 나아가 식량생산은 자연 조건에 좌우되고 자연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선조들이 고심하고 노력해온 흔적을 밝혀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본초영양연구회장 井垣圭復이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本草榮養硏究會를 조직하여 「神農本草」에 기반한 곡물 이외에 山野草木 가운데 영양이 좋은 재료를 조사 연구하기 위해 관계 고문헌을 섭렵하여 흉년에 대비하여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방제를 다수 발견하여 수집하고 여기에 몇 가지 俗方을 더하여 이 책을 꾸몄다고 밝혔다.

이 책에는 「본초강목」 「구황촬요」 「구황보유」 「도인복이방」 「포박자」 「성혜방」 「의학입문」 등 7종서가 인용되어 있다. 「道人服餌方」 외에는 모두 우리가 흔히 아는 방서이다.
본문은 일반구황방, 仙家服食方, 救荒醬, 해독방 이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구황방에는 松葉을 비롯하여 楡皮, 桔梗, 葛根, 薯蕷, 栗, 芋 등 30여 종이 실려 있다. 잘 알다시피 솔잎과 느릅나무껍질까지 벗겨내어 주린 배를 채워야 했던 당시 실정이 여실히 전해지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는 여러 가지 초목의 잎이나 열매 심지어 海草까지 지목하고 있어 수확한 농산물을 수탈당하고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조선인의 참담한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2장 선가복식방은 예전에 도가에서 양생수련을 위해 사용했던 복식법을 원용한 것으로 밀랍, 송지, 흑두, 대두황, 갱미, 나미, 청량미, 만청자 등의 재료를 가공하여 허기를 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아마도 이러한 방법들은 전쟁 수행을 위한 병사들의 비상식으로 제공하거나 일반미를 아끼기 위한 대체식으로 권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좀 더 특이한 것은 3장에 소개한 구황장이다. 大豆葉醬, 沙蔘桔梗醬, 太穀醬, 淸醬, 急造醬 등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 역시 맛과 영양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라, 쌀과 콩의 소비량을 줄이고 극한 상황에서 견디기 위한 대체용으로 개발한 것이리라.

4장의 해독방에 이르러서는 이 책의 목적이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보다 더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 千金木粥, 葵菜湯 등 해독효능이 있는 여러 가지 재료나 기능성 식사, 그리고 生蔬菜中毒, 菌중독, 河豚 중독, 계란 중독에 쓰이는 여러 가지 해독방이 실려 있다.
책이 나온 때는 소화 18년도이니 대동아전쟁이 치열한 막바지를 향해 내닫던 1943년 즈음이다. 본문을 상하 2단으로 나누어 위쪽에는 일본어로 아랫단에는 원문과 한글풀이를 대조해 배열하였다. 전쟁을 위한 식량공출과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이 만든 비극이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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