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41) -「萬古要鑑」
상태바
고의서산책(541) -「萬古要鑑」
  • 승인 2012.06.14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http://


내 주변의 흩어진 知識財産

 

「만고요감」

과거 어느 집안에나 하나씩 있었을 법한 책으로 생활의약 지식을 모아놓은 필사본 구급방이다. 이런 사본류 의서에서 흔히 보듯이 저자가 밝혀져 있거나 서발이 남아 있진 않다.
책의 형태나 한글 필치로 보아 대략 150년 가량 되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자그마한 크기에 서툰 솜씨로 묶은 것으로 보아 애초부터 치밀하게 구성한 의학서로 집필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집안에서 그때그때 얻어들은 의약지식을 모아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려는 목적으로 적어둔 家藏 袖珍本 의약서라고 할 수 있다.

목적성을 갖고 쓴 글이 아니기에 목차 구성이 허술해 보인다. 百病救急新方, 要鑑, 要覽 등 여러 제목이 본문 가운데 혼용되어 있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체 내용을 4편으로 나누어 제1편은 救急新方, 제2편은 採花要覽, 제3편은 백병구급신방, 4편은 要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편에서 다루고 있는 병증이 서로 중첩되고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각각 서로 다른 구급방의 내용을 차례대로 채록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제1편에서는 먼저 小兒門이 등장하고 이어 婦人門, 雜病門으로 세분하여 여러 가지 질병증상에 대한 간단한 대처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의 기술방식은 먼저 한자로 표기한 병명을 적고, 그 아래 병증과 처치법은 모두 한글로 기재하였다. 간혹 읽기 어려운 병증명에 대해서는 역시 한글이름을 표기해 두기도 하였다.

예컨대 첫머리 救急新方의 소아문에는 初生, 初生不飮乳, 重舌, 舌腫, 臍風撮口, 臍瘡, 臍腫, 吐乳不止, 咳逆, 泄瀉, 未滿月驚風, 急驚, 慢驚, 疳積, 胎毒, 胎丹, 腹瘧, 濕癬, 乾癬, 頭瘡 등 출생 직후 우선 조처할 사항과 초생아에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병증에 대한 간단한 대처 요령에 대해 골고루 열거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인문에서는 月經不通, 月經來無定時, 胎動不安, 死胎未産, 姙婦小便不通, 難産, 橫産倒産, 胞衣不下, 産後腹痛과 같은 다양한 여성 질환이 나열되어 있고, 그에 따른 치료법이 서툰 한글 서체로 또박또박 기록되어 있다. 또 잡병문에도 頭痛, 頭風, 邊頭風, 안질, 眼昏暗, 稻穀芒入眼, 飛絲入眼, 沙塵入眼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상습성 질환증상에 대한 여러 가지 처치법을 수록하였다.

본문 내용 가운데는 시대적인 여건상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약재도 많고 현실에서는 적용해 보기 어려운 조처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수긍되는 점이 많다. 특히 제2편의 채화요람편에서는 각종 질병증상에 대해 인가 주변에서 흔히 채취할 수 있는 각종 화초의 씨앗종류라든가, 과실과 약나무, 동식물 등에서 얻을 수 있는 값싼 향약재료로 치방을 구성해 놓아 친근성이 높다.

한때 우리는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누대에 걸쳐 채득하고 전승해온 수많은 의약경험과 건강지식을 무관심하게 버려두었다. 그것들 대부분이 현대문명의 저편으로 소멸되고 망각되어 버린 지금에 이르러서야 다시금 전통지식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나고야의정서의 발효, 그리고 국제전통지식재산권기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에 의하면 과거 하찮게 여겨왔던 치료지식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전통지식재산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