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39)-「藥徵」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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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39)-「藥徵」①
  • 승인 2012.05.3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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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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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毒으로 病毒을 다스리는 이치

 

「약징」

에도시대 일본의 古方派 의학을 대표하는 의학자로 손꼽히는 吉益東洞(1702∼1773)이 「傷寒論」 「金匱要略」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약물을 중심으로 임상에서 많이 쓰이는 약재에 대해 분석하고 고증한 본초서이다. 전서는 3권3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771년 지은 自序가 권두에 실려 있다.

이 책은 吉益東洞의 대표작으로, 1785년에 처음 간행된 이후 1812년, 1885년 제자를 비롯한 후세 의가들에 의해 여러 차례 보정과 증보를 계속해 여러 종류의 판본이 존재한다. 정식으로 출판하기 이전에 7차례에 걸쳐 원고를 개정하는 産苦를 겪었으며, 목판으로 간행하기도 전에 유포된 異種本이나 사본이 여러 종류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호응이 매우 컸다고 한다.

훗날 그의 嫡子인 吉益南涯는 「氣血水藥徵」을 저술하여 아버지가 주창했던 萬病一毒說을 수정하고자 試圖하기에 이르렀으며, 본서의 補訂版으로는 尾台榕堂이 교정한 「重校藥徵」 등이 전한다. 현재 「近世漢方集成」에 刊本과 異本이 영인되어 수록되어 있으며, 「皇漢醫學叢書」 「東洞全集」 등에 활자본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 근대 大塚敬節이 주석한 訓注本(1971)이 岩波書店에서 「日本思想大系」 근세과학사상편으로 출판되어 널리 보급되어 있다. 국내에는 연전에 이정환 정창현이 옮긴 한글 번역판이 출시되어 있다.

저자는 「傷寒論」 「金匱要略」에 나오는 條文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약재별 효능을 귀납하고 考定하는데 주력하였다. 상권에는 石膏 滑石 芒硝 甘草 黃芪 人蔘 桔梗 朮과 같은 대표 약물 9종이 실려 있고, 중권에는 黃芩 柴胡 貝母 細辛 當歸 芎藭 芍藥 같은 약물 24종이 수재되어 있다. 그리고 하권에는 桂枝 厚朴 枳實 梔子 酸棗仁 茯苓 猪苓 등 20여 종 약물에 대한 고증이 실려 있어 도합 53종 약재에 대한 연구 결과가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약재에 대해서 主治를 비롯하여 旁治 考徵 互考 辨誤 品考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해 놓았다. 일종의 본초서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종래의 전통적인 본초서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잡다하게 지식을 열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을 취함으로써 당대 의약계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나아가 현대 일본의 한방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書經」에서 말한 “만일 약을 먹고도 어지럽지 않으면 그 병이 낫지 않는다(若藥弗瞑眩, 厥疾弗瘳)”라는 말과 「周禮」에서 언급한 “의사란 의정의 명령을 관장하니 독약을 모아 치료하는 일에 이바지한다(醫師, 掌醫之政令, 聚毒藥, 共醫事)”라는 말을 인용해 “약은 곧 독이요, 병도 또한 독이니 藥毒으로 病毒을 공격하기 때문에 어지럽게 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나아가 본초서를 살펴보면, 독이 있는 약도 있고 독이 없는 약도 있으며, 사람을 保養하는 약도 있고 영양이 없는 약도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크게 혼란스러워 한다고 전제하였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그가 본초를 辨正하는 이유이자 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질병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독약을 갖추어야 하고, 이것이 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소임이며, 정기를 기르려면 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는데, 이것은 食醫가 해야 할 직분이라고 말하면서 음식은 常이고 질병은 變이니 기존의 본초에서 이 두 가지를 혼동하여 하나로 설명한 것은 온당치 않다고 보았다. 다음호에서 그가 제창한 약론과 본초 사례를 들어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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