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37) -「四柱自解家庭寶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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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37) -「四柱自解家庭寶鑑」
  • 승인 2012.05.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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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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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세상에 횡행한 民間俗信

 

「사주자해가정보감」 표지

오늘은 전문의학서가 아닌 민간의 통속서 가운데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가장 널리 유포되었던 가정보감류 서적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대한제국의 멸망에서 한일합병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고 가정을 지켜낼 힘조차 무력하였다. 그래서 失意에 빠진 나머지 운명론에 빠져들게 되었고, 최소한의 액운을 피해나가기 위한 방편이라도 찾아보려고 전전긍긍하였다.

1919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여 여러 차례 중판을 거듭하였다. 본문은 세로쓰기로 편집되어 있으며, 신식활자로 인쇄하였다.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지식층보다는 부인네와 소외계층을 주요 독자로 삼았기에 원문은 한글을 위주로 하고 한자말에 해당하는 주요 단어에 작은 크기의 한자를 병기하는 방식으로 편집해 놓아 가독성이 좋은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주로 자신의 운명을 가름할 사주를 풀어 스스로 찾아볼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 목록에 제시한 전체 내용의 구성을 살펴보면 첫 장에는 네기동내는법(四柱自解法), 오행상생법(五行相生法), 디지상합법(地支相合法) 등 27항에 걸친 사주풀이 방법에 대해 열거하였다.

사주풀이에 이어 많은 분량이 편지하는법(尺牘書式)에 할애되어 있는데 권두에 簡牘目錄이 따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祖孫間往復, 父子間往復, 夫婦間往復 등 주고받는 상대에 따라 구분하여 실어 놓았고 弔狀書式, 婚書式과 당시에 통용되고 있던 각종 신고서식이 수록되어 있다. 또 여기에는 잡다한 내용이 포괄되어 있는데, 그 중 養生月覽法에 건강과 보건에 관한 내용이 다소 들어 있다.

양생월람은 전통적으로 12달로 나누어 행해오던 월령풍속을 본떠 꾸며 놓은 것이다. 예컨대, 정월초하루에 屠蘇酒를 식구대로 조금씩 나누어 먹음으로써 건강을 기원하고 돌림병을 예방하고자 하였고, 정월 7일에 남자는 赤豆 7개, 여자는 14개를 먹으면 百病이 침노치 못한다고 하였다. 또 4월 4일이나 7~9일에 枸杞子나무로 목욕하면 長生不老한다고 써있는데, 날짜로 보아 사월초파일에 맞추어 齋戒하던 습속에서 유래된 건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타 대부분의 내용은 근거가 빈약하고 禁忌나 呪術에 가까워 선뜻 수긍하긴 어려워 보인다.

특별히 섣달 그믐날 밤인 除夕에 행해지는 풍속이 많은데, 그중 쓰지 못할 약을 모아다가 뜰 가운데서 불사르면 길하다고 한 것은 해를 넘겨 부패하거나 변질된 약을 잘못 복용해서 탈이 날까봐 예방하는 조처라 해석되고 藥香으로 주변을 청결하게 해주는 효과도 아우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날에는 집안사람과 노비를 꾸짖고 욕하거나 器皿을 파괴하거나 술에 크게 취하면 祥瑞롭지 않다고 경고했으니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아랫사람들에게 평소 억눌렸던 감정을 풀어주고 즐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게 하고자 배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기타 이 책에는 조선 13도 각 군의 관할구역과 위치, 거리 등을 정리한 내용이 들어 있고 출생신고서, 혼인신고서, 이혼신고서, 도로이용허가청원서, 도난신고서, 여행권하부청원서 등 각종 민원서류 서식이 소개되어있어 당시 총독부 식민통치 시대에 진행된 민생관련 필요지식과 조선인에게 강요되었던 일상의 규제를 엿볼 수 있다.

또 토정비결, 해몽법과 같은 잡방이 들어 있어 이 역시 암울했던 당시 상황에서 민초들이 그나마 위로를 받으려 했던 통속적인 대안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는 전녀위남법이나 부인이 산후탈에 비는 법, 여러 가지 민간요법이 채록되어 있는데, 그나마 대부분 믿을 만한 게 못되고 간단하고 손쉽게 취해볼 수 있는 속설에 불과해 안타까운 당시 실정을 추정해 보기에 어렵지 않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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