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파문, 그리고 한약과 펜디메트라진
상태바
도핑 파문, 그리고 한약과 펜디메트라진
  • 승인 2015.07.09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준태

제준태

mjmedi@http://


한방내과전문의 제준태 칼럼

최근 한 배구선수가 도핑 테스트에서 펜메트라진/펜디메트라진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으레 그렇듯이 한약을 먹었는데 도핑에서 나올 줄 몰랐다는 식의 해명을 했다가 한약에는 그런 성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준태
한방내과전문의
한약을 복용한 운동 선수의 소변에서 펜메트라진/펜디메트라진이 나올 수 있는 경우는 다음 경우 뿐입니다.

1. 한약에 누가 의도적으로 펜디메트라진을 넣은 경우
2. 한약을 먹으면서 몰래 펜디메트라진도 먹은 경우
3. 펜디메트라진만 먹고 한약 핑계를 댄 경우
이번 사례는 3번의 경우였습니다. 결국 그 선수는 ‘한약은 먹지 않았고, 펜디메트라진을 다이어트 목적으로 복용했다’고 밝혔습니다.

한약에 펜디메트라진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유

한약에도 혹시 펜디메트라진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한의사들은 한약에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던 걸까요.

요즘 한약 연구에서는 HPLC라는 분석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약 안에 들어 있는 화합물들을 분자량에 따라 그래프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백수오와 이엽우피소를 구분하는 것 역시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펜디메트라진에선 사용할 수 없지만, 백수오를 검출할 때 사용했던 DNA를 증폭 분석하는 PCR이라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HPLC는 혼합물에 포함된 물질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만약 이 선수가 한약을 정말 복용했고, 그 한약을 1봉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약 안에 펜디메트라진이 있는 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핑의 경우 역시 민감한 이슈로 한약재 중에 도핑에서 검출되는 성분을 가진 한약재들은 모두 보고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한의사들이 한약을 처방할 때 사용 하는 ‘의약품용 한약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품질을 보증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목록이 관리되고 있습니다. 새로 한약재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약재들의 성분 등에 대해서 확인이 가능하고, 도핑에 대한 정보도 대한스포츠한의학회에서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펜메트라진/펜디메트라진은 도핑 테스트에서 문제가 되는 한약재 리스트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물질입니다. 한약재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분명 한약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어 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료인의 처방전이 필요한 펜디메트라진

게다가 펜디메트라진, 이 약은 넣고 싶다고 마음대로 넣을 수 있느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 약은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입니다. 전문의약품은 약국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약이 아니라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와 같은 의료인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는 약을 말합니다.

그리고 펜디메트라진은 다이어트약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에 따른 향정신성의약품입니다. 향정신성의약품이기 때문에 의사 처방전이 필요합니다. 한의사가 임의로 처방할 수도 없는 약이고 몰래 구할 수도 없는 약입니다.

그러니까 한약을 먹고 펜메트라진/펜디메트라진이 검출 되었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향정신성의약품을 누군가 알 수 없는 경로로 빼돌려 한약에 몰래 넣기까지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펜메트라진/펜디메트라진은 경기기간 중에만 사용이 금지된 약물입니다. 게다가 펜디메트라진의 체내 반감기는 19~24시간, 펜메트라진의 체내 반감기는 8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약을 먹어도 며칠만 지나면 검사에 걸리지 않습니다. 도핑 검사 전에 복용한 모든 약물이나 보충제를 서류로 제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누락이 되었다는 것은 의도적인 복용을 의심할 만한 정황입니다. 무엇보다 다이어트를 위해 복용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변명입니다. 다이어트 용도로 사용되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체급을 위한 감량이 필요하지 않은 경기 종목에서 시즌 중에 운동량을 생각하면 운동 선수에게 식욕억제를 위한 향정신성 의약품이 필요한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 중 복용 금지 약물된 까닭

운동 경기 중에 다이어트약을 금지시킨다고만 하면 누가 봐도 이상하겠죠? 이 약물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신경 말단에서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을 유지시키는 약입니다. 그 효과로 동체시력이 향상되고 집중력이 좋아지며 피로도 덜 느끼게 됩니다. 운동선수라면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효능을 가지고 있고, 그것 때문에 경기 중 복용 금지 약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향정신성 의약품의 오남용에서 가장 흔히 나오는 변명 또한 불안, 다이어트 등의 핑계입니다. 그러나 운동 선수가 시즌 중에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한 의사가 설마 환자의 히스토리를 듣지도 않고 도핑 약물 목록도 확인하지 않고 처방한 걸까요?

한약에 대한 오해, 그리고 안전한 한약 복용

한국도핑방지위원회 홈페이지에는 금지 약물을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단, 매 년 규정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처방할 때마다 체크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약재의 경우, 백약자, 백굴채, 앵속각, 우신, 자하거, 여춘화과실, 인뇨, 마전자, 여송과, 고우난낭, 마황, 반하, 심엽황화염, 구골수피, 구골엽, 고정다, 오동자, 다수근, 다엽 등이 도핑 금지 목록에 있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처방 시 한 번 더 확인을 해야 합니다.

운동 선수도 진료 받을 때 꼭 자신이 운동 선수임을 알리고, 의사가 처방하기 전에 이 사이트를 확인하여 처방하도록 해야 합니다.

금지약물 사용의 책임은 모르고 처방한 의사가 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금지약물도 자신의 체내에 유입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선수 각 개인의 의무이며,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선수가 책임을 진다’고 명시 되어 있습니다.

의사에겐 작은 실수도 선수에게는 큰 철퇴가 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의료인이라면 처방을 하기 전에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의사가 처방하지 않은 약을 한약이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체 불명의 시커먼 국물을 한약이라고 오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건강을 위해 먹는 한약에 어떤 것이 들어갈지 모른다면 정말 큰 일이겠죠.

특히 운동선수들의 경우에는 도핑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안전한 한약 복용, 한의사에게 의뢰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