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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병 시평] 사스의 추억
시평
2015년 06월 18일 () 11:44:05 채윤병 mjmedi@mjmedi.com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MERS-CoV 중동호흡기증후군)는 지난 5월 말 첫 환자를 시작으로 6월 16일 오전 8시 현재 확진자 154명 및 사망 19명으로 대한민국 전역을 떨게 만들고 있다. 감염에 대한 우려가 잠식되지 않는 가운데,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고 가능한 외출을 자제하는 등 일상의 모습까지 바꿔 놓고 있다.

   

채 윤 병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경혈학교실 교수

현재 국내 일류 대형병원도 질병의 엄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실정이고, 국가 방역체계의 허술함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일 대한한의사협회는 현재 메르스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의료진과 함께 한의학적 치료를 병행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2004년 발표된 세계보건기구 보고서에서 사스 질환 전변과정에 따라 적절한 한약의 병용투여가 임상증상의 개선 및 사망률 감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메르스 확산을 막는 것과 함께 환자 치료에 있어서 가능한 모든 의학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19세기 후반 서양의학이 한의학에 비해 우월한 것은 바로 공공위생과 보건지식 분야였다.

20세기 초 서양의학을 중국에 도입한 여암은 “중의학은 병인에 대한 인식이 불명확하고 진단에도 정해진 규칙이 없어 전염병으로 인한 사인을 조사하여 병을 진단하지도 전염병을 예방하지도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전염병 관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던 시절, 전통의학이 서양의학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2003년 3월 15일 세계보건기구는 인류가 대면한 새로운 전염병 사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 중증급성 호흡기 증후군)를 선포하였다.

2002년 11월 중국 광둥 지방에서 시작된 사스는 전염성이 매우 심각하고 일부 환자들은 급속히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2003년 2월말 중국 광저우의 의사가 홍콩의 결혼 피로연에 참석하여 발병하였고, 그가 묵었던 호텔에서 다른 여행객을 전염시키게 되었다.

이어 3월 초 홍콩 웨일스 병원에 입원한 방문객은 2주간 200명에게 사스를 전염시켰고 이중 절반은 의료인과 의대생이었다.

2003년 사스로 인한 사망률은 초기에는 비교적 낮았지만, 3월 홍콩의 고층 아파트 거주민 300여명이 동시에 발병하면서 홍콩 전역이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사망보고도 끊이지 않게 되고 전염병 초기 효과가 있던 약물들도 점차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다행히 당시 사스는 한국에는 심각한 영향을 주지 못했었지만, 홍콩 및 주변국 사람들 마음 속에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2003년 5월에 이르러 홍콩에서 사스 환자 치료를 위한 한의학 치료를 결합하는 것을 도입하게 되었다. 사스는 한의학계에서 온병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며, 관련 처방과 치료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온병의 이법방약을 따라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환자 개인의 상황에 따라 변증시치 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표준 처방을 사용해도 좋다고 하였다. 홍콩 서양의학계에서는 한의학 치료의 근거를 따지며, 이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수백 개의 처방 가운데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변별하기 어렵고 그 판별 기준이나 원칙은 서양의학계에서 인정되기 어려웠다.

한편, 2003년 5월 중국 본토의 과학활동주간을 맞이하면서, 방역정책 또한 한양방 협진이 아닌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사스 극복을 위해서 과학의 실증적인 것을 추구하고 과학의 힘에 의지해야 함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홍수처럼 밀려오는 사스의 물결 속에 근거중심의학의 방법은 한계를 드러내고야 만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나은 치료방법이 무엇인지 의료인은 어떤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하는지 각 방면 문제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스 환자 치료에서 사용한 리바비린과 스테로이드 역시 급한 가운데 시험 삼아 써 본 것이지 임상시험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사스가 잠잠해진 후 홍콩의학계에서도 엄격한 분석을 통해 리바비린 역시 사망률 감소와 상관이 없음을 인정하였다.

현재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개발된 백신도 없고, 직접적인 치료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증상을 조절해서 이겨내도록 하는 대증요법을 적용하고 몸에서 생성된 항체를 통해 병을 이겨내는 방법이 최선으로 알려져 있다.

급변하는 전염병 상황에서 근거중심의학의 방법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무작위대조군 연구를 통해 치료에 대한 해답을 얻기 힘들 것이다. ‘효과 있는 의학지식’을 ‘근거중심의학’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효과 있는 의학지식’인 한의학의 ‘온병’에서의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고민한다면, 우리는 분명 한걸음 앞선 상태에서 이 질병을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전염성 질환의 관리 및 치료에 있어서 한의학이 소외되어 있는 것은 여전하다. 전례 없는 전염병의 확산이라는 국가적 비상사태에 이른 가운데, 한방-양방의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접어두고 국민보건 전선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국가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한의학을 적극 포함하려는 보건의료 분야 및 당국의 전향적인 사고와 적절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한의학 분야에서 전염병 관리에 대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공중보건 분야의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3년 봄, 친구들의 입 소문을 통해 보게 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화성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소재를 영화화하였고, 용의자의 알 수 없는 듯한 표정 뒤에 감춰진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는 살인이라는 추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더욱 더 기억하게 만든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진범을 잡기 위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덮어 씌워버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5년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메르스, 우리 사회의 미제 사건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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