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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병 시평] 플라시보 3.0
의학에서 플라시보: “단지 가짜 약인가?” 아니면 “효과 있는 플라시보 약인가?”
2015년 11월 19일 () 14:04:20 채윤병 mjmedi@mjmedi.com

누군가 “가짜 약 한번 드셔 보실래요?” 한다면, 어디서 그런 사기를 치냐 하면서 “그런 가짜 약을 누가 먹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몇 해전 실제로 가짜 약을 알고 먹었는데도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증상이 개선되었다는 연구가 발표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플라시보 효과는 효과가 없는 물질을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을 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채 윤 병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경혈학교실 교수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플라시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도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는 단순히 치료에 대한 기대감 외에도 의사-환자의 관계 및 치료적 맥락 또한 함께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플라시보 효과는 의학 치료라는 맥락에서 환자의 증상이 개선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주말 미국 보스턴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개최된 침 연구 학회(Society for Acupuncture Research)를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간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였고, 학회에 가기 전부터 눈 여겨 둔 세션이 있었다.

어빙커쉬(Irving Kirsch)와 테드 캡척(Ted Kaptchuk) 등이 발제한 “침 연구에서 플라시보 역할 변화: 신경영상에서 임상연구”라는 세션이다. 테드 캡척은 플라시보 연구프로그램(Program in Placebo Studies: PiPS)을 주도하고, 최근 “Placebo Effect in Medicine”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번 학회에서 그는 그동안 연구에 대한 특별강연을 하고 감사패를 받았다.

플라시보는 오래 전에는 치료제가 아직 없는 상태에서 환자에게 치료에 대한 희망을 통해 자연치유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던 것이었다(플라시보 1.0). 임상연구가 대두되면서 플라시보는 치료제의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하여 자연적 관해, 증상의 변동성, 평균으로 회귀 등을 통제하는 음성 대조군으로 사용되고 있다.

치료제는 임상연구를 통해 플라시보에 비해서 우월한 효과를 보일 때 유효성을 검증 받고 새로운 치료제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플라시보는 ‘진짜 약’을 검증하기 위해 필요한 ‘가짜 약’으로 존재하기를 바라 왔는지 모르겠다.

침 임상연구에서도 플라시보 대조군을 위해서 개발된 비침습성 거짓 침이 이용되어 왔다. 그동안 수많은 임상연구를 통해 침 치료의 유효성이 검증된 질환들도 있지만, 많은 연구에서 침 치료가 거짓 침에 비해 효과가 좋다는 유효성을 보여주지 못 하였다. 반면에 거짓 침은 무처치 대조군에 비해 더 좋은 소위 ‘플라시보 효과’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결과는 “침 효과는 플라시보 효과이다”라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지만, 침 치료의 현상을 복합적인 프로세스로 보았을 때 대조군 설정의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침 치료가 플라시보 대조군에 비해 유효성(efficacy)을 보이지 못 할지라도, 다른 치료제보다는 오히려 높은 효과(effectiveness)를 보이는 ‘유효성 패러독스(efficacy paradox)’를 보인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침 연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번 학회에서 어빙 커쉬는 우울증 등 정신과 질환에서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플라시보의 덫(Placebo trap)’이란 용어를 인용하면서 “플라시보보다 좋은 특이적 효과를 갖는다는 생각은 새로 개발되는 약물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목적으로 하는 연구의 경우에서만 사실이다”라고 하였다.

치료에 있어서 인지적 요소가 개입되는 것은 이미 개발된 약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진통제를 치료 받을 때 의사가 언제 주는 지 알고 주는 경우(open injection)가 컴퓨터로 언제 주입되는지 모르게 하는 경우(hidden injection)에 비해 진통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또한 편두통 치료제의 경우도 플라시보라고 알려준 경우는 효과가 없었는데, 편두통 치료제라고 알려준 경우에만 치료효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기존의 의학적 치료에서도 인지적인 부분이 관여한다는 점에서 의학에서 플라시보 효과의 역할에 대해 재조명되고 있다.

임상연구에 있어서 플라시보는 ‘가짜 약’으로서 대조군 역할을 제대로 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효과 있는 플라시보’를 보여주었다(플라시보 2.0). 이제 바야흐로 실제 삶에 있어서도 이러한 ‘효과 있는 플라시보’의 기능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플라시보 3.0).

이미 미국의 한 회사(zeeboeffect. com)는 플라시보 효과를 이용하는 태블릿을 판매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환자의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면, 활용해 볼 가치가 있다라는 말이다. 물론 의학 분야와의 마찰이나 제약회사와의 역학 관계 그리고 법률적인 문제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의학에서 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한 치료제 개발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한편, 치료적 맥락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학에서 플라시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마음의 변화가 몸의 변화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치유효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플라시보 효과는 생명을 바로 구해내는 수술법이나 타깃이 분명한 약물에 의한 효과에 비교하면 약한 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플라시보 효과는 의학이 힐링 과정으로 이끄는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의학에서 플라시보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위해 독일 뒤스부르그-에센 대학 Placebo Competence Team에 연수를 가게 됩니다. 이번 글을 끝으로 민족의학신문 시평을 마칩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고 성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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