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의 파고가 높아진 한의계의 현시점에서 경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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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의 파고가 높아진 한의계의 현시점에서 경고하다
  • 승인 2013.08.0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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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영

홍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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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비평 | Chinese Medicine in Contemporary China: Plurality and Synthesis
한의사 독자들이 쉽게 눈길을 줄 일도, 사 볼 일도 없는 영어로 된 책을 굳이 목록에 올린 이유가 있다. 20세기 중의학의 신세계가 그리 멋지지도 않을뿐더러 TCM이 결코 우리의 롤모델이 아니며 잘 해야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 정도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폴커 샤이드 著
Duke University Press 刊

의료인류학자인 경희대 김태우 교수님이 몇 주 전 민족의학신문에서 소개했듯이 폴커 샤이드는 올 가을에(9월 9~13일) 산청에서 열리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를 주관하는 국제아시아전통의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중의사이자 중의학 관련 연구자로서 그의 저술과 저서는 관련 학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편이다.

일전에 도서비평에서 다룬 킴 테일러의 책(「Chinese Medicine in Early Communist China, 1945-63」, 조만간 번역서가 나온다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기다려 보시기 바란다)이 20세기 전반에서 중반까지의 중의학 변동을 다루었다면 폴커 샤이드는 이 시기는 물론이고 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변화과정을 모두 다루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중국이 택한 현대화와 표준화 방식, 서양의학과의 탈경계가 어떠한 결과를 불러왔는지 환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중의학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도 서양의학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몇 년 후에 지은 또 다른 저서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뒤집고 있음이 확인된다.(민족의학신문 907호 6월 20일자 20면 김태우 교수 기고 참조) 실제로도 이 책에서 다룬 여러 임상가들의 의안을 보면 중서의학의 소통이 아니라 서양의학의 뱃속에서 소화가 되어버려 전통의 잔해만 남은 경우도 발견 된다.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룬 ‘변증론치’는 과거에 킴 테일러도 말한 바와 같이 중의학을 현대화하고 표준화하려는 시도 속에서 변증법을 결합시켜 만들어낸 도구이다. 많은 한의사들이 이러한 변증론치 식 교과서를 통해 학교과정을 이수하였으므로 변증론치라는 단어와 함께 ‘간양상항’이나 ‘비위실조’와 같은 수많은 변증론치 신조어들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중국의 변증론치 체계는 정치, 경제, 의료제도를 포괄하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심하게 변형되어 왔고, 결국 이 변증론치 체계를 만든 당사자들마저 현재의 결과물을 비판하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표준화의 파고가 높아진 우리 한의계의 현시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우리에게 경고장과도 같다. 멘붕에 빠진 중의학을 보면서 한의학의 표준화가 정치현실이나 경제적 이해관계, 복잡한 의료계의 역학관계 속에서 우리의 정당한 의도나 이상적 지향과는 상관없이 변질되거나 이용당할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준화의 고삐를 조이는 것만이 한의학의 나아갈 길이라는 믿음을 심각하게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홍세영 / 경희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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