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53)-「痘瘡經驗方」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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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53)-「痘瘡經驗方」③
  • 승인 2012.09.1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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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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諺解로 읽는 1600년대 전염병 醫案

 

「두창경험방」 희두방

허준이 「痘瘡集要」를 펴낸 이래 痘瘡의 전변 과정은 대개 發熱, 出痘, 起瘡, 貫膿, 收靨 이 5가지 단계로 정리되었다. 이 책에서도 발열이 初熱로 바뀌고 전변하는 시간단위를 3日 대신 3朝라고 쓴 표현이 바뀌었을 뿐, 기본적으로 동일한 변증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각 단계별로 증상변화에 따라 對症施治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변증의 척도에 따라 처치법을 설정해 놓은 점이다. 곧 문장 첫머리에 ‘이 때[此時]’라는 발어투를 붙여 시작하는데, 대략 각 전변단계를 전제로 증상이 변화되거나 특이증상이 발현되는 시점을 경계로 예후를 관찰하고 상황에 따라 치료처방을 바꾸어 대응한다.

이 말은 바꿔 말해서 ‘만일 이 때 이러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하는 정도의 의미를 내포하는 가정법을 사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훨씬 긴박하고 적실한 느낌을 갖도록 하고 특정단계에서 반복되는 증상표현을 생략함으로써 필요한 정보만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재빨리 요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이제 저자의 두창 치료 경험의안 속에서 특징적인 요소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처음 열이 나기 시작[初熱]한 지 3일 만에 비로소 아픔을 느끼게 되면 傷寒이든 痘疾이건 막론하고 급히 升麻葛根湯을 사용한다. 즉 상한과 두창, 모두 열증을 먼저 다스렸던 것이다.
너무 어려 약을 먹이기 쉽지 않을 때는 金銀花나 忍冬茶를 써서 發汗하기도 하나, 탕약을 먹이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때 驚搐하고 숨이 막히면서 눈을 치켜뜨거든 절대로 붙잡지 말고 搐搦된 채로 놓아두고 급히 牛黃抱龍丸이나 抱龍丸을 감초와 박하를 등량으로 달인 물로 개어 먹인다.
이때에 만약 허리가 아프면 반드시 黑陷이 되려는 징조이니 급히 神解湯을 써야 한다. 약을 먹이고 나서 따뜻하게 덮어주어 땀을 내야 하는데, 땀이 나지 않으면 요통이 그칠 때까지 계속 먹인다. 만약 약을 먹이지 못하더라도 땀을 많이 내면 좋다. 음식을 삼켜 먹을 수 있는 경우에는 흑함을 免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편 ‘出痘三朝’에서는 이때 급히 마른 연지[乾臙脂]를 白蜜에 개어서 눈자위(眼眶)나 입술, 코와 귓구멍에 자주 발라 주어 두창이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옛 고사에 오나라 왕이 총애하는 귀비가 얼굴에 상처가 생기자 의사에게 보이고 수달피 기름으로 만든 고약을 조제해 발랐는데, 그만 약이 과했던지 흉터에 붉은 자욱이 남고 말았다. 병이 나은 후 왕이 더욱 어여삐 여기는 걸 보고 궁녀들이 이를 부러워하여 연지를 바르고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책에서 제시한 원문과 언해가 곧이곧대로 직역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이 문단의 끄트머리 문장은 “俗用砂鉢臙脂, 和朱砂, 調白蜜用之, 亦得有效云”이라 되어 있어 민간에서 사용하는 사발연지도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해당하는 구문의 언해를 보면 “혹 사발연지에 주사를 타 꿀에 말아 바르니 또한 효험이 있더라하나 마침내 간연지만 못하니라”(필자 현대어 표기)라고 적고 있어 원문과 다소 어감이 다르더라도 실상에 이해하기 적합한 내용을 덧붙여서 풀어 쓴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이 책이 의학교육용 교재가 아닌 긴급을 요하는 방역전문서로 펴낸 책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실용적인 방식을 채택한 결과임을 수긍할 수 있다. 또 「痘瘡集要」에서 豬尾血을 사용해 解熱한 처치법이 여기서는 당당하게 ‘猪尾膏’라는 처방 이름을 얻어 수록되었다. 언해의서로 펴낸 「두창집요」의 정신이 그대로 계승된 전염병 방역치료 경험록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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