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55)-「濟飢活民方」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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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55)-「濟飢活民方」①
  • 승인 2012.09.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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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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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황에 걸린 백성, 救活方

 

「포저집」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가을기운이 느껴지면서 들판 풍경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일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던 과거시대에는 추수철이 되어도 흉년이 들어 걱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광해군 즉위 초년인 기유년(1609) 10월, 蒲渚 趙翼(1579∼1655)이 쓴 이 책 「濟飢活民方」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흉년이 들어서 곡식이 귀한 터에 사람이 예년처럼 먹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곡식이 없어질 것이요, 곡식이 없는데 먹을 수 있는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부황이 나서 죽고 말 것이니,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길밖에 없다.”(이하 한국고전번역원 역, 필자 윤문)
위의 글에서 저자는 흉년으로 굶주려서 부종이 오고 죽을 지경에 다다른 조선 백성들의 참담한 실정을 묘사하고 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해에는 이미 여러 차례 돌림병과 기근이 닥쳐 허준이 「언해의서」를 펴낸 바로 이듬해이다. 몹시 어려운 상황에서 곡식을 아끼고 굶주린 백성들의 배를 채워줄 묘안을 찾고자 이 책을 펴낸 것이다. 바로 그런 의도가 다음 글에 피력했다.

“이 (구황)법은 오로지 雜物을 사용하고 곡식을 조금 넣어서 먹는 방법이다. 잡물이 많으면 배를 채울 수가 있고, 穀氣가 있으면 비록 소량이라도 부황이 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곡식을 쓰는 것이 적기 때문에 비록 남아 있는 곡식이 적다하더라도 많은 시간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요, 먹을 것이 갑자기 떨어져서 부황에 빠지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이 책은 전해지지 않지만 「포저집」 제26권에 실려 있는 ‘濟肌活民方序’를 통해서 그 개략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잡물이라는 것은 松葉이나 楡皮, 豆殼과 같은 것들을 말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궁벽한 시골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지극히 쉽게 얻을 수 있는데다가 빌려서 먹기만 하면 반드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니, 굶주림을 구하는 계책으로 이것보다 더 좋은 방도는 없다고 적극 추천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머릿속으로 짐작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세상에 널리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자가 드물다고 말한다. 당시 이러한 구황방이 널리 보급되어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 방법이야말로 흉년이 들어서 기아에 허덕일 적에 실행한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말하고 있다.

조익은 집필 당시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내가 왕년에 湖西에 있을 적에 이 방법을 얻었는데, 흉년을 만나거나 兵亂을 당해서 깊은 산속이나 궁벽진 골짜기로 피해 들어갔을 적에 양식을 조달할 수 없을 경우에는 이 방법을 쓰면 살아날 수 있겠다고 여기고는 별도로 기록해서 보관해 두었다. 금년에 만난 큰 흉년은 실로 근래에 없던 일로서, 兩西와 경기지방으로부터 湖西의 절반까지 천리의 땅이 온통 赤地로 변하고 말았다. 그냥 앉아서 굶어 죽을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불쌍한 동포들이 몇 천만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비록 직무상으로는 백성들을 구할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속마음으로는 백성들이 장차 죽게 되는 것을 참으로 눈뜨고 볼 수 없어서 마치 나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기에 이 방법을 가지고 구제해 보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또 여러 가지 구황방을 채록하여 이 책을 펴낸 방식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古方에 의거해서 종류별로 차례를 매긴 다음에 번거로운 내용을 刪削하고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는 한편, 이에 대한 총론을 서술하고 다시 諺文으로 해석해서 시골에 사는 백성들도 모두 분명히 알게 하였다.”
「동의보감」 편찬이 한창이던 시점, 조선의 목민관이 동포를 살릴 방안으로 펴낸 구황서였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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