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79] 끊임없이 이어진 향약의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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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79] 끊임없이 이어진 향약의 물줄기
  • 승인 2015.05.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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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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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法鄕藥方」 ①

 
앞뒤로 몸을 가린 겉옷마저도 잃어버린 채 상처투성이 민낯으로 남아 있는 고서 한 권을 마주한다. 당연히 주인의 이름이나 주소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다만 여기저기 닳아빠져 지문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헤진 책장 사이로 그간 겪어온 풍파와 세월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 「신법향약방」

그래서 필자 또한 이 책의 화려했던 지난 이력을 낱낱이 드러내어 소개하진 못한다. 단지 아직 깊은 골로 남은 주름진 얼굴 속에서 세월이 각인한 향약 탐색의 흔적을 읽어보고자 할 뿐이다.

애초부터 변변한 표지가 붙어 있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지금은 본문의 일부가 짖겨나간 채로 누군가 임시로 다른 한지를 구해다가 찢겨나간 상처 부위를 겨우 가려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 이 책에 새겨진 향약 효용에 관해서는 겉모습만으로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의미 있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본문은 대부분 한문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곳곳에 박힌 용어들은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것들이어서 이 책의 성격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면 內腫에 가래나무뿌리(楸根皮) 한줌(一握)에 청주 2사발(沙鉢)을 붓고 달여 절반이 되거든 1종지(宗子)를 공복에 마시되(空心飮) 5∼6일이면 신효하다고 적은 경우이다.

특이한 처치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귓속에 벌레가 들어가 나오지 않을 때, 놋그릇을 귀에 대고 두드려 소리를 내면 벌레가 저절로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작은 벌레나 곤충들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 음역대 이상의 초음파를 감지한다고 하니 이것을 역이용한 처치법이라 할 수 있는데, 상상 밖의 아이디어와 재치가 돋보이는 옛사람들의 가정구급법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부인 흉통에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적용하였다. 밀가루(眞末) 1되에다가 고춧가루(枯椒末) 1숟갈을 잘 섞어 국수를 밀어 2∼3그릇 먹이면 낫는다고 했으니 화병으로 인한 가슴앓이에 매콤한 밀국수의 발산효과가 흉통을 어느 정도 달래주는 효과를 냈던 모양이다.

믿기지 않는 특이치법도 수재되어 있다. 탈홍에 쓰는 방법인데 자석(指南石)을 곱게 갈아 밀가루에 잘 섞어 떡을 빚어 배꼽에 붙이는데, 먼저 쇠붙이(金鐵)를 달인 물로 항문을 씻게 한다. 자력을 이용해 항문을 끌어올린다는 생각인 모양인데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접근방식 하나만은 가히 기발하다 아니 할 수 없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이 있다. 滯症에 고추(枯草) 7개, 대추 7매, 생강 10편, 담배(南草) 3줄기에 식염 1홉을 함께 달여 먹는다고 하였다.

고추와 담배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도입된 외래식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인데 이것이 도입 후 초기에는 약재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나아가 辛辣한 약성을 적체에 이용한 것은 외부로부터 도입된 생소한 약초와 이질적인 지식을 어떻게 수용하여 토착화하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陰瘡에 쓰이는 加味金丹散에서는 唐麝香을 빼고 鄕麝香을 넣어 쓰라는 주기가 달려있다.

治唐瘡別神方이라고 적은 殺蟲敗痰湯에서도 독성약을 많이 먹어 구토가 나는 경우에는 唐麝香을 빼고 鄕麝香을 넣어 쓰라고 하였으며, 우황도 鄕牛黃이라고 표기하여 토산약재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각별하였음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이 매우 실천적인 임상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들을 모아 작성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때 마침 산청에서 한의학박물관에 소장된 향약집성방에 대한 연구발표회가 개최됐다. 간행시기가 서로 다른 3종의 판본에 새겨진 향약발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 자리였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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