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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대체 왜 존재하는 것일까
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3>
2014년 02월 06일 () 09:46:42 정창운 mjmedi@mjmedi.com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질병은 대체 왜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의학에 종사하는 한의사라면 한번쯤 가져보았을 의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층위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진화의학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많은 질환들은 한 개체가 완전히 성숙하기 이전인 발생기 및 성장기에 조기 사망을 유발하거나 번식력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은 각각의 개체마다 다르게 작용하거나, 특정 개체에만 작용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각각의 개체가 가진 고유성, 종내 다양성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체마다 독특한 유전적 다양성으로 인해 각 개체는 다양한 외부 요인에 대해 다르게 반응하게 되며, 이는 질병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게 된다. 특정 질환에 대해 저항성을 가지는 개체는 상대적으로 번식할 확률이 높아지며, 이는 그러한 저항성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더 많이 증식하게 되는, 우수한 복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이 겸형(鎌形)적혈구 빈혈이다.

이러한 설명을 보면,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서 모든 개체가 자연스레 이러한 능력을 획득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현실을 보면 진화적 과정을 통해서 질병에 대한 적응이 길러지게 된다 할지라도, 이러한 과정이 모든 질병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유전적 변이에는 언제나 자연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화의학에서는 이러한 진화론의 자연선택이라는 관점을 도입하여 질병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제한에는 우선 자연선택 그 자체가 가진 한계가 있다. 어떤 질환에 대해 저항성을 가지게 해주는 유전자가 한 개체군에서 발생하거나, 타 집단에서 유입된다 할지라도, 이러한 유전자는 생식과정에서의 유전자의 재조합 과정으로 인해 다양한 무작위 배분이 일어나게 되며, 그 결과 이러한 유전자는 개체군 전체로 확산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또한 유전적으로 특정 질환에 강하다는 것이 반드시 건강이나 장수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한 영향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생식 기회가 감소하게 된다면, 이러한 유전자는 복제 기회가 줄어들게 되며, 결과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거나 소멸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거꾸로, 헌팅턴무도병과 같이 생식이 가능한 시기 이후에 발생하는 유전질환과도 같이 명백히 개체에 해로운 것이 확인되더라도 유전자의 복제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기에 결과적으로 존속되는 경우도 있다.

유전자의 발현은 항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특정 기능에 있어서는 trade-off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우리가 병에 걸리는 이유 중의 한 가지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위산의 분비가 많아질수록 위궤양이 더 많이 유발되겠지만, 거꾸로 음식물을 통한 병원체에 대한 감염 확률은 줄어들 것이다.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진화는 정밀한 설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통한 하나의 과정이고, 각각의 개체는 그 하나의 결과물로서 인간이 생각하는 최선의 답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앞서 소개된 사례인 겸형 적혈구 빈혈은 말라리아의 증식을 억제하는 이점을 지니고 있지만, 거꾸로 신체 활동을 약화시키는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것도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병원체들도 생명체로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 역시 질병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숙주와 병원체는 결코 분리되지 못한 채 냉전시기 군비경쟁과도 같은 끝없는 변화, 공진화 과정을 거친다. 이는 다양한 감염 질환에 있어서 각 개체에 대한 해악이 그 전염 매개체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에서 알 수 있다. 늘 항생제의 과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항생제의 사용은 그만큼 병원체의 저항력을 빠르게 진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인간에 있어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진화적 과정은 대단히 느린 반면, 인류 문명의 발전은 유례가 없이 빠르다는 점이다. 진화적 시간에서 볼 때 우리 인류는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종이 분화되어 나오던 시기와 큰 차이가 없으나, 인류가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 환경의 발전은 진화적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불일치가 많은 만성질환의 한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 사례로서, 유당불내증(경련, 설사, 오심, 구역 등을 유발하는)에 대한 연구가 있다. 성인의 경우 유아기에 비해 락타아제의 생성이 줄게 되며, 이에 유당을 흡수하지 못하게 되어 다양한 소화기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유당을 흡수하는 능력이 자연선택과정에 있어 1%의 이점을 가져다준다고 하면, 325세대, 8000여년의 시간이 걸려야 비로소 전체 개체군의 90%에 이러한 락타아제를 충분히 생성할 수 있도록 하게 되는 유전자들이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만큼 진화적 과정은 기나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이는 지리적 분포에 따라 각기 다른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는 것의 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에서 유당불내증 빈도가 높다.)

이 외에도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위생가설에서처럼 ‘청결’이라는 유례 없는 문화의 도입이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나 여성의 피임약 복용, 혹은 저출산 경향, 나아가 궁극적으로 장수 그 자체가 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인류의 복잡한 왕래로 인한 전염 질환의 유례 없는 확산 등 문명은 질병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거꾸로 흑사병, 르네상스와도 같이 질병이 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한데, 이에 대해서는 지거리스트의 서적을 참조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여전히 인류의 다수는 50만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영양결핍으로 다양한 질환에 시달리며,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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