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 돌이켜 보게 만드는 ‘진화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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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돌이켜 보게 만드는 ‘진화 의학’
  • 승인 2014.01.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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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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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2>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은 그의 부친과 조부 모두 의사였던 의사가문 출신이다. 그 역시 의과대학에 진학하였으나, 2년 만에 그만두고 의사가 되기를 포기했지만 그의 평생에서 의학은 진화라는 주제에서 항상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한 연구를 보면 미국 의사 중 ‘진화이론이 의학에 있어 중요한가’ 하는 물음에 답한 경우는 1000명 중에 1명 남짓이라고 보고된 바 있다. 그만큼 진화론은 의학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다. 물론 진화론은 ‘자연현상’에 대한 이론이고, 의학은 질병에 대해 실용적으로, ‘인위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 학문이므로 일종의 반대 관계에 있거나, 결국 자연현상의 원리를 기술하는 것 만으로는 현실적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기에 의학계에서의 관심을 얻기는 어렵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당장 감염질환에서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항생제 내성 균주의 문제만 하더라도, 진화적 관점에서는 이미 1940년대부터 지적되어온 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진화와 의학이 무관하다고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항생물질을 통해 아무리 이러한 균주들을 일시적으로 통제할 수 있더라도, 이들 균들은 매우 자연적인 진화과정을 통해 그를 이겨내고(이겨낼 수 있는 것만이 증식할 수 있으므로) 증식할 수 있게 된다. 더 강력한 항생제는 더 강력한 균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이는 진화론에서 흔히 언급되는 ‘붉은여왕’(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위 환경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기에, 죽어라 뛰지 않으면 제자리에도 있을 수 없다는 에피소드에서 따온 말이다. 런닝머신을 생각해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효과 그 자체이다. 의학에서 이러한 문제를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었다면, 항생제의 적정 사용을 통해 내성균의 창궐을 최대한 늦출 수 있을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항생제의 임상적 적정 투여는 어느 지침에나 항상 들어갈 정도로 잘 고쳐지지 않는 문제이다.

또한, 자연선택이론을 중심으로 한 진화이론과 그 학술적 내용들은 적절한 형식을 이루고 의학계 내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왔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항생제에 관한 이슈들, 아프리카 인구를 대상으로 연구된 겸형 적혈구빈혈증과 말라리아, 헌팅턴 무도병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등 진화이론은 질병의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도구가 되며, 만성질환에 있어서도 과거 인류가 적응해온 자연적 환경과 인간 문명에 의해 변화된 인위적 환경의 차이에 의한 괴리, 즉 인류 스스로에 의해 초래된 부적응(미스매치)을 이해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진화 의학은 점점 의학에 있어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 진화 의학이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다. 진화 이론이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부분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학에서도 질환의 소이연에 대한 한 설명만을 제시할 뿐 이를 해결하려는 방책에 대해서는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 대단히 한정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화현상의 상당 부분이 지질학적인 시간대에서 이뤄지며, 개체보다는 종(種)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역시 의학과 거리를 만들어 내는 부분이다.

이러한 순수 과학과 임상 의학의 괴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 중요성이 겉으로나 ‘실용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이들 학문의 기저에는 공통된 이해와 연구, 사고방식의 일치가 있다는 점이다. 진화의학이 의학 전반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가치가 임상적으로는 다소 부족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결국 질환의 발생은 사람이라는 종의 자연사를 벗어날 수는 없고, 진화이론은 가장 근본적으로 이러한 질환의 발생 원인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점들은 임상적 술기와 단편적인 치료에 다소 치중하고 있는 한의계 역시도 스스로를 돌이켜볼 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진화론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18~19세기의 박물학자들에 의한 자연에 대한 다양한, 그러나 집요한 ‘관찰’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진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찾아낸 다윈의 천재성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원시 자료의 축적과 이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다양한 이론들의 경합, 그리고 논증과 실제 자료에 근거해 이뤄진 과학 활동의 과정들의 중요성이 잊혀져서는 안 될 것 같다. 과거의 과학 이론들도 일부 한의 의론들만큼이나 괴상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강제로 이를 진리라 여기고 바꿀 수 없는 것이라 보지는 않았다. 한의계 역시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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