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34) -「 簡易方」②
상태바
고의서산책(534) -「 簡易方」②
  • 승인 2012.04.26 1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http://


四大成形 설파한 세종시대 佛敎醫學

 

「간이방」의 저자 여민수에 대한 기록
「의방유취」에는 이 책이 총론편 뿐만 아니라 오장문, 풍문, 한문 등 임상 각과에 다양하게 인용되었다. 1446년 熊宗立이 24권으로 엮은 「名方類證醫書大全」 醫學源流편에는 원저자 黎民壽에 대한 짤막한 傳이 실려 있다. “民壽, 字景仁, 宋景定中, 參釋氏, 號黎居士, 初註玉函經, 後作簡易方, 斷病提綱, 決脈精要, 俗謂之醫家四書” 이로써 우리는 그가 이 책(11권)과 함께 「決脈精要」(1권), 「斷病提綱」, 「玉函經解」(3권)를 남겼으며, 이들을 한데 묶어 ‘醫家四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총론편의 四大奧論에는 의학에 처음 입문하는 초심자가 의학을 공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논구한 대목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여러 諸家 方書를 두루 읽어 의학의 이치를 탐구하고 다시 佛書를 읽어 보니 의약에 빗대어 설파한 내용이 많은 것을 보고서 근원적으로 의학의 원리를 깨우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생사윤회를 가엽게 여기는 부처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탄생하는 것은 우주 안에서 地·水·火·風이라는 4가지 요소가 일시적으로 뭉쳐져 형상을 이루는 것이며, 죽음도 역시 이 4가지가 없어지는 것일 뿐이니 본래 실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의학을 공부하는 자는 당연히 생로병사의 이치에 밝아야만 그 질병과 고통의 원인을 궁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여기서 말하는 의사의 마음이란 그저 환자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는 측은한 마음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이치를 깨닫고 이를 통해 부처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불경 내용 가운데 의학을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 일맥상통하기 때문인데, “의학이란 방편을 교묘하게 잘 구사하는 것이니 두루 모든 사람을 가리지 않고 구해야만 한다. 의학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곧 부처의 마음이다(醫善巧方便, 普救一切人. 知醫之心, 卽佛之心也.)”라고 단언하였다.

때문에 종교적 차원에서 一身의 존재는 자연계 구성요소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임시적인 형상이며, 질병 또한 4요소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이고 찰나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나아가 이러한 측면에서 불교에서는 부처를 중생을 구제하는 大醫王이라 칭하며, 생멸의 이치를 훤히 깨치고 있는 초월적 존재로 비정하고 있다. 

이러한 인체관과 생사관은 150여년 뒤 「동의보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오늘날 전통적인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인체에 대한 인식이나 혹은 질병의 변화를 관찰하는 방식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동의보감」 신형편 ‘四大成形’에서는 인체의 형성과 생명활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釋氏가 논하여 말하기를, “사람은 地·水·火·風이 화합하여 만들어진다. 근골과 기육은 모두 地에 속하고, 정혈과 진액은 모두 水에 속하며, 호흡과 따뜻함은 모두 火에 속하고, 靈明 활동은 모두 風에 속한다. 그러므로 풍이 멎으면 기가 끊어지고 화가 꺼지면 몸이 차가워지며 수가 마르면 피가 없어지고 토가 흩어지면 몸이 갈라진다.”

地·水·火·風 이 4가지 요소가 잘 화합되면 일신이 편안하고 하나라도 조화를 잃으면 질병이 생겨나게 된다. 간단하면서도 소박한 이 생각은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냉엄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준다. 오래 전에 잃어버린 책, 비록 그 흔적만이 「의방유취」에 담겨져 전해오지만 生死輪廻의 엄숙함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