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32) - 「急就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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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32) - 「急就章」
  • 승인 2012.04.1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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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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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樂無極 人蔘 기록한 古千字文

長樂無極 人蔘 기록한 古千字文

 

「급취장」목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급취장’이란 글자를 빨리 익히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속성 한자교본으로, 일명 「急就篇」이라고도 부른다. 前漢 元帝(재위 B.C. 49~B.C. 33)때 史游라는 학자가 만들었다고 전하지만 워낙 오래 전의 일이고 漢代의 木簡으로 출토되거나 일부 내용이 塼刻으로 전해지는 것인지라 분명치 않은 모양이다.

전문은 4권 34장으로 각 장은 60자 남짓하니 자수로는 대략 2천자 가량이 실려 있는 셈이다. 문장은 7字句와 3자귀로 이루어져 있어 암기하기 쉽도록 고안되었다. 서체는 예서를 풀어서 거칠게 베껴 썼는데, 唐나라 때 명필로 이름난 顔眞卿의 할아버지 되는 顔師古라는 학자가 주석을 남겼다. 또 송대 王應麟의 주석이나 청대 孫星衍의 考異같은 후대의 주석본이 전해지고 있어 그 잔편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학동들의 기초학습 교재이자 입문서로 널리 애용되었던 「천자문」이 5세기경 周興嗣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보다도 500년 남짓 더 이른 시기이니 「천자문」보다도 할아버지뻘이 되는 셈이다. 일설에 왕명을 받고 하룻밤 새에 천자문을 엮어내야 했던 주흥사가 일을 마친 후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전하는데, 2천자를 겹치지 않게 글을 지은 사람은 얼마나 더 진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우리가 이 오래된 자서에 주목하는 이유는 글자나 서체 때문이 아니고 여기에 의약과 관련된 오래된 내용과 글자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서에는 序言과 姓名, 만물과 頌으로만 구분되어 있다. 박이정에서 펴낸 양효성의 편역본에는 여기에 실려 있는 많은 글자를 주제별로 다시 분류해 놓은 것이 있는데, 인체나 오장육부, 질병을 표현하는 많은 글자가 소개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질병에 관해서는 寒氣나 泄 痂 疥 癡 聾 癰疽 消渴 같은 다양한 병명이 보인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瘼이나 痮, 癉 같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명료하지 않는 것도 있다.

또 동식물과 함께 인류의 생활에 밀접한 사물들을 표기하는 글자들이 수재되어 있는데, 주식으로 쓰이는 오곡류와 반찬으로 먹는 채소류, 그리고 약용으로 사용하는 약초류가 상당수 기재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약초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黃芩 伏令 甘草 附子 半夏와 같은 약재명 33종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지금 약명과 다른 옛 이름도 상당수 보이는데, 예컨대 茈胡(柴胡의 옛 표기)라든가 芎藭(천궁), 款東(款冬), 菟盧(免絲) 등의 명칭은 고본초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이 밖에도 薑이나 龜骨(거북뼈) 뿐만 아니라 棗 杏 瓜 등의 과일도 약재로 쓰이는 것들이다. 또 楡(느릅나무) 椿(참죽나무) 樗(가죽나무) 槐(홰나무) 같은 약재로 쓰이는 나무이름도 기재되어 있다.

문장 중에서도 의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중병이 들어 몸이 쇠약해지면 의사를 불러 고쳐야 하니 쑥뜸과 자침, 그리고 약제를 처방하여 病邪를 몰아낸다.(篤癃衰廢迎醫匠, 灸刺和藥逐去邪)”
질병 치료에 있어서 의사의 역할과 침 구 약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치료법을 통해 발병의 원인이 된 사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의학관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인삼’을 기록한 가장 오래된 문헌이라는 점에서 회자되곤 하는데, 어떤 본초서보다도 앞선 시기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글자는 ‘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人蔘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급취장 전문의 마지막 귀는 “長樂無極老復丁”으로 끝을 맺고 있다. 늙지 않고 무병장수를 꿈꾸는 인간의 소망은 고금에 변함이 없나 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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