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33) -「 簡易方」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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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33) -「 簡易方」①
  • 승인 2012.04.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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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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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봄날의 中風論

세종시대 의학을 대표하는 거작, 「의방유취」의 총론편에는 우리에게 낯선 문헌이 하나 등장한다. 서명은 다소 평범해 보이는 「간이방」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담겨진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대략 여말선초에 유입된 것으로 여겨지며, 불교의학의 색채가 진하게 그려져 있어 특색이 있다.

저자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南宋 때 黎民樹라는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 밑에서 과거를 준비했으나, 여러 차례 낙방하자 의업도 사람을 구하는 것이니 벼슬하여 백성 구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나중에 의술이 고명해져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평생 담박하고 욕심 없는 생활을 즐겼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듯 환자를 진료하는데 성심성의를 다했기에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불교를 숭상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어떤 계기로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평소 음주는 물론 육식이나 기름과 간장까지도 먹지 않았으며, 하루에 맨밥 한 그릇과 냉수와 白  만 먹을 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난감해 하였는데, 몸과 마음이 청결해야 신명이 통하여 병 치료에 착오가 없다고 말하였으며, 오히려 정신과 기력이 강건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은 중국에는 전본이 남아 있지 않으며, 일본 內閣文庫에 尙存한다고 하니 아마도 조선을 거쳐 전해진 책들이 아닐까 싶다. 「의방유취」 인용제서에는 ‘玉函經’ ‘黎居士簡易方’ ‘黎居士決脈精要’ ‘斷病提綱’의 순서로 나란히 편입되어 있지만 여기에 쓰인 이후로는 사라지고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의방유취」총론에는 男女動靜說, 四大奧論, 五常大論 같은 논설이 실려 있고 오장문에는 五臟象位, 六腑象位, 또 五臟의 平脈, 病脈, 死脈, 眞脈, 色候, 聲音, 臭味, 主配와 함께 五臟相涉, 病屬五臟과 같은 독특한 병론이 수록되어 있어 주목하게 된다. 풍문에는 중풍론이 실려 있는데, 풍과 기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잘 논변해 놓았기 때문에 한번 읽어볼 만하다.

“風은 천지의 浩蕩한 氣이다. 순조로우면 만물을 길러낼 수 있지만 지나치면 어느 것이든지 해를 끼치게 할 수 있다. 사람도 역시 바람에 맞는 수가 있으며, 간혹 불구가 되거나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醫經에서는 모든 병 가운데 우두머리라고 내세운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지는 설명에서 “원래는 풍이나 기가 한가지로 하늘과 땅 사이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음양이 같지 않고 사람의 몸에 있어서는 吹와 呵로 구별할 수 있다. 풍은 음이어서 형체는 없으나 세력이 있고 기는 양이어서 성질은 있으나 위압함이 없다. 세게 불어내면(吹) 차갑고 날카로워 바람이 되고 천천히 불어내면 따뜻하고 부드러워 기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대지가 트림하여 바람을 토해내고 山澤이 달구어져 기가 되는 것이다. 바람이 거세면 기가 맑아지고 기가 짙어지면 바람이 잠잠해지는 것이니 사람도 이와 같아 천지 가운데 음풍을 등지고 양기를 보듬고 살아가는 것이니 沖氣를 품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여 자연의 변화 현상과 인간의 생체 규율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선거바람이 지나가자 오랫동안 망설이던 봄볕이 초목에 온기를 불어넣어 화창한 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바람결이 새침하지만 겨우내 움츠렸던 몸 안에도 대지의 양기를 채워 넣을 때가 되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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