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중화인민공화국 초기(1945-1963)의 중국의학 : 혁명의 의학」을 읽고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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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중화인민공화국 초기(1945-1963)의 중국의학 : 혁명의 의학」을 읽고④
  • 승인 2012.02.0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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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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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old)’ 것이 오히려 가치 있는 의학으로 자리매김

< 연재 순서 >
1. 책에 대한 소개
2. (1장) 중국의 내전(1945~9)과 새로운 침구학
3. (2장) 중의학과 서양의학의 통합(1949~53)
4. (3장) 현대화와 TCM 창조(1953~6)
5. (4장) 중의학의 표준화(1957~63)

이 명 선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석사1기

1953~6년은 전통중국의학(TCM)의 제도화에서 중요한 기간이다. 이 시기는 중국 의학이 마오의 혁명 계획을 재도입한 때부터 4개의 중의학원을 설립함으로써 중국 공산당이 중국 의학을 공식적으로 제도화한 때까지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두 사건을 서로 필연적인 결과로 보지 않는다. 제도화는 마오 혁명의 원래 목적이 아니었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 의학을 발전시킨 처음의 의도는 의학을 그 자체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학과 통일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중국 의학을 과학화하려는 것이었고, 이는 ‘서의가 중의를 공부한다’는 프로그램을 통해 성취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중국 최초의 TCM 정부기관인 중의연구원이 특히 이 목적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일단 혁명 계획이 진행되기 시작하자 마오는 흥미를 잃었다. 다시 말해, 이후의 중의학 발전은 정책 실행자의 책임이 되었다. 그리고 중의학 정책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지시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면서 공식적인 정책은 중국 의학에 보다 유리한 쪽으로 나아갔다. 가장 즉각적인 결과로 4곳의 중의학원에서는 중의학을 제도화하였고, 이후 중국 본토 내에서 하나의 유효한 의료체계로서 TCM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단원은 TCM이라고 하는 20세기 의학이 탄생하기까지의 단편적인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Ⅰ. 양의사가 중의학을 공부하다
1953년 말부터 중의학에 대한 보건부의 정책은 바뀌었다. 1953년 12월 24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제3차 국가보건협정에서 새로운 의제가 발표되었다. 중국 의학의 수준을 실질적으로 올리는 작업은 협정에서 발표된 ‘중의학 업적 증진, 중의학 역량의 충분한 발휘’라는 제목의 보고서와 함께 시작됐다.

중국 의료 종사자들의 보수교육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오히려 이들의 정체성을 파괴시켰다는 비난이 제기되었던 데 대한 해결책으로 이 보고서는 교육 커리큘럼에서 중의학과 관련 수업 비율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침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와 중의학을 통합하는 정책, 사람들이 중국 의료 종사자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도록 촉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1953년 말까지의 중점은 여전히 중국 의료 종사자 보수교육을 위해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중의학을 향상시키는 데에 있었다. 중국 의료 종사자 보수교육을 위한 학교는 1958년까지 존재했고, 1953년 협정에서 결정된 바에 따라 중국 의학 수업은 전체 커리큘럼의 40~60%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이 학교는 이미 임상에서 활동 중인 의사만을 가르치는 곳으로, 중의학 지식의 전파 보다는 그러한 지식을 통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는 1956년 4개의 중의학원이 설립되어 그들 자신의 능력으로 중의학을 가르칠 수 있게 된 이후에야 변했다.

1954년 보건부는 갑자기 ‘서의가 중의를 공부한다’는 이례적인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이제까지 서양과학에 종속되었던 중의학은 그 지위가 극적으로 뒤바뀌어 처음으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몇 년 안에 중의학을 일정 수준으로 올리려고 했던 원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당에 대한 충성도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중의학이 정치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던 것이다.

Ⅱ. ‘전통 중의학(TCM)’의 탄생
‘Chinese medicine’과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이 동일하게 중의(中    )로 번역되지만 각각의 영어 표현은 다르다.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정권의 목적을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형태의 의학을 홍보하기 위해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Chinese medicine’은 19세기 후반 외국으로부터 다른 종류의 의학이 들어온 결과 생겨난 비교적 새로운 용어이다. 둘을 구분하기 위해 외국 의학은 ‘Western medicine(西   )’, 원래 중국에 존재하던 것을 ‘Chinese medicine’이라고 했는데, 서양의학이 중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왜 서양의학을 공부한 중국인 의사가 ‘西    ’라고 불려야 하는지에 대해 불만이 증가했다. Croizier는 ‘중국’과 ‘서양’이라고 하는 형용사의 지속은 근대 중국에서 자국의 정체성을 재차 확인하려고 하는 심리적인 압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中   , 中國   學, 中華   學의 영어 표현은 모두 ‘Chinese medicine’으로 같지만 그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中華   學은 중국 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서양의 생의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뜻이 나머지 둘과 매우 다르다. 그에 비해 中   와 中國    學은 구별하기 어렵다. 中華    學이 중국 내 의학의 특정한 형태를 가리키는 반면 中   는 현재의 중국 의학을 나타낸다.

中    가 현재의 의학만을 나타내면서 과거의 의학을 나타내는 별개의 용어가 필요해졌다. 이는 중국 의학을 향한 태도에 모순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中   라는 용어는 한편으로 2천년의 역사를 대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의 의학(20세기의 요구에 적합한 의학)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따라서 과거의 의학과 공산당의 ‘새로운’, ‘개선된’ 中   간의 명백한 차이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1955년에 ‘고대 의학’과 ‘의학 유산’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혁명기 동안 ‘새로운(new)’ 것의 반대로서 부정적인 의미를 가졌던 ‘낡은(old)’ 것이 이제는 가치 있는 과거의 의학을 뜻하는 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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