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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시평] 게임의 법칙
시평
2015년 05월 28일 () 11:23:13 김윤경 mjmedi@mjmedi.com

제주도에서 성황리에 종료된 국제학술대회 ICCMR 2015에 다녀왔다. 총 참가자는 600명 정도로 국내에서 열린 전통의학/보완대체의학/통합의학 관련 학술대회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었다.

   

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30여개국에서 온 주요연구자들이 기초연구, 임상연구, 교육, 의료서비스, 연구방법론의 다양한 분야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세션을 준비하여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재미있는 학회였다.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아 다양한 한의학 연구자들이 모두 관심분야를 찾을 수 있는 학회이기도 했으며 진단기준이나 질적연구방법, 코크란리뷰 작성법 등의 교육 세션도 있어 연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주도하여 사상체질 및 침치료연구, 진단연구 등 국내 연구성과를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 통합의학에 대한 논의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는데, ICCMR의 주체가 국제보완의학연구회(ISCMR; International Society for Complementary Medicine Research)로 2003년 북미와 유럽 지역 연구자들의 학술모임으로 시작한 만큼 서구의 시각과 현재 그들의 주요관심사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대세는 보완대체의학(CAM)에서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으로 이미 넘어간 듯했다. 보완의학연구회지만 보완의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다 통합의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충돌과 대립으로 인해 통합의학이 자리잡기는 요원한 듯 보이지만 국외에서는 서양의학과 보완대체의학의 장점을 뽑아서 전신적인 심신의학의 관점으로 환자에게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이미 환자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제공되고 있는 통합의학을 어떻게 정의하여 판을 짤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각국의 자료들을 분석하고 통합의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뽑고 어떤 것들이 통합의학적인 특성인지, 통합의학적인 시각은 어떤 것인지, 전통의학 중에서 통합의학에 들어갈 것들은 어떤 것인지를 연구하여 발표하고 있었다.

한의사로서 그 논의를 지켜보면서 한국의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는 생각과 위기감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서양의학을 제공하는 의사와 전통/보완대체의학을 제공하는 한의사가 의료법상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의 상황에 맞는 통합의학이 정의되고 정형화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현재 서구의 통합의학 클리닉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의사의 주도로 명상, 침구치료, 마사지, 한약치료, 태극권 등 운동테라피 등이 결합된 형태일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통합의학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은 의사가 아니라 그 아래의 진료보조인력으로 생각되고 최근 들어 국가에 등록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양방이 공존하는 한국적 상황을 무시하고 발전된 서양의학의 일환으로 서구의 현실을 반영하여 세팅된 통합의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면 그 주도권은 의사들이 잡게 될 것이다.

보완대체의학이나 전통의학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은, 한의학을 종교니 한의사를 무당이니 하는 의사들이 통합의학의 전문가로 행세하게 될지 모른다.

국내에서는 양의학과 한의학이 구분되어 있으므로 의사 주도의 통합의학에서는 IMS나 dry needling, 생약제제 등 용어를 사용하여 한의학적인 냄새는 없애려고 노력하면서 통합의학 서비스를 도울 그 외의 진료보조인력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카이로프랙틱 의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으며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통합의학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미래의 한의사는 어떻게 될까… 몸서리가 쳐졌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우리는 언제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게 될까. 이렇게 각국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국의 상황을 토로하고 토론하며 상호 배움을 얻는 풍조는 언제쯤 한의계에 정착될까.

외국의 상황에 맞는 제도나 규정이 이렇게 국제적 논의를 거쳐 만들어지면, 무비판적으로 들어와 우리나라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의 논의를 거쳐 준비하고 데이터를 쌓으며 우리에게 맞는 것은 이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될까.

외국에 없는 제도이고 선례가 없으니 고려할 수 없다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한 전세계적인 통합의학의 변화의 물결을 한의사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당장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내 일 아니라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통합의학에 대한 논의에 한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한국적 상황을 알리고 우리의 강점인 한의학적인 임상결과들을 발표하고 한국적 모델의 장점을 설파하여야 한다. 스스로의 존재가치는 스스로 입증하여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잘하고 있으니까 다들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한양방 교차고용제도를 살려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모두 이해하는 한의사가 통합의학의 주체로서 양의학의 도움을 받아 통합의학 클리닉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방병원은 그동안 양의학과 협진을 하며 중환자 케어까지 하는 한국적인 통합의학을 시도해 왔던 것 아닌가. 한의학이 주체가 되어 필요한 서양의학 케어와 주변 인력들을 구상하고 만들어 나가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의사로서 국민에게 최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나 제도가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하자.

통합의학 클리닉을 운영할 수 있는 규모 있고 앞서가는 한방병원들이 외국의 통합의학 클리닉에 관심을 갖고 국내에서도 이를 선도적으로 시도하여 한국의 통합의학이 어떤 것인지 세계에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게임을 주도하려면 게임의 법칙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의학의 시대에 한의학의 자리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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