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일본하코미연구소 다카오 타케히로 대표의 ‘하코미세라피’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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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일본하코미연구소 다카오 타케히로 대표의 ‘하코미세라피’ 강연
  • 승인 2013.12.0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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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희

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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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 그리고 하코미세라피(Hakomi therapy) ②

분노는 기대에 어긋나는 어떤 일에서 생겨납니다. 불행이나 침해에 대해 체념의 마음이 강하면 상대방에 대한 기대도 강해지지 않습니다. 기대감이 낮은데 강한 분노가 생기는 일도 없습니다.

일본인들은 집단 안에서 눈에 띄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기주장을 억제하고, ‘체념’이라는 정서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화병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고 보여집니다. 일본에서는 조직 안에서 강하게 자기주장을 펼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싶을 때에는 무대 뒤(공식적인 자리 이면)에서 합의를 얻어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게 하여 일본인들은 분노의 감정이나 그 외의 감정들도 한국인들에 비해 기복이 심하지 않고 단조롭습니다.

이 즈음해서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얼마 전에 친구 별장에서 묵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 있었던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고서 저는 그 불꽃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어느 한국인 친구가 “나는 불꽃을 그렇게 오래 보고 있고 싶지는 않아요. 2~3분이면 충분해요. 불꽃은 내 안에서 타고 있으니 바깥에서 오랫동안 보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어쩐지 정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한국 드라마에서도 분노나 하고 싶은 말을 큰 소리로 표출하는 것을 종종 보아온 탓입니다. 그 격한 감정이나 표현은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통상적으로는 의식조차 되지 않는 무의식의 저편에 숨어 있는 그림자(shadow)부분일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통합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그림자를 표현하고 있는 사람이나 대상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 대상이 이성이면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허준을 만든 이병훈 감독은 그 후, ‘대장금’ ‘이산’ ‘동이’ ‘마의’라는 훌륭한 드라마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일본에서도 NHK가 방영하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병훈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 사방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오랫동안 그들의 침략을 받아내어 왔고 지금도 그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은 현실을 벗어나 꿈을 꿀 필요가 있다. 그래서 드라마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서 외국의 침입에 대항하여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격렬한 투지라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 격렬함이 화병으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와 공업화, 산업화의 힘에 의해 일본도 한국도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양국 모두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이 없어지고 오히려 다이어트가 큰 비즈니스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 모두 고도 성장기는 이미 끝이 났습니다. 그러면 한국이나 일본의 이 다음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정치가나 부자들은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좀 더 높여서 더욱 풍요로워지려고 합니다. 그들이 풍요로움을 추구하면 할수록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빈부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고 한들 더 이상 고도성장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도성장을 거쳐 풍요로워진 한국이나 일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사십 몇 위에서 오십 몇 위쯤 된다고 합니다.

한국도 일본도 더욱 풍요로워지려고 노력하며 미래를 꿈꾸어 왔습니다. 풍요로워지면서 집, 차, 음식, 의복 등은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초조함과 긴장감,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달성하고 변화하려고 하는 Doing에 계속해서 가치를 두면 행복감은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지금을 사는 Being에 가치를 둘 때 행복감이 솟아날 것입니다. 생명 그 자체에도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인 Being 뿐만 아니라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려고 하는 성질인 Doing에 대한 충동은 있겠지만, 생명의 리듬에서는 변화는 좀 더 완만하고 일정함을 유지하며 변하지 않으려는 성질이 강합니다. 지난 반세기간의 변화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생명이 따라가기 버거워 쩔쩔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서양 사상과 자본주의는 인간의 생명과 몸을 객관화하고 수단화 해 왔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명과 몸을 주인으로 하여 Being의 가치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로 바꾸어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화병과 이지메로 상징되는 두 사회의 대조적인 면은 있지만, 양국 모두 공통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Being의 가치로 전환해 가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또한 강한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화병과 이지메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일을 하면서, 그 마음의 병이 이 시대의 가치관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음을 통감하곤 합니다.

한의학은 마음과 몸을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기의 작용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통합적 생명이 기본임을 자명한 전제로 하고 있는 한방정신의학이야말로 이러한 가치 전환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한방정신의학에서 배움을 얻어, 일본에서도 이러한 가치전환을 모색해 가려고 합니다.

서양에서도 자본주의와 과학의 분석정신에 의한 생명의 객관화에 의문을 느끼며 그 패러다임을 동양 철학을 통해 전환하려고 하는 심리학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해서 일본에 소개한 Hakomi Therapy도 그 중 한 가지입니다. 하코미에서는 서양심리학에 노자의 철학, 그리고 불교의 명상법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Mindfulness와 Being의 가치(Loving Presence)를 치료의 기본 기법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하코미 세라피를 통해 동양사상이 철학으로서, 또한 기법으로서도 마음 치료에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본과 시장의 힘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사회의 가치관을 전환시키는 데에는 앞으로도 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양의 전통사상인 명상(Mindfulness)과 지금을 사는 Being의 가치를 치료의 기본기법으로 삼음으로써 전환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Mindfulness와 Being skill이 마음의 치료에 큰 효과가 있다는 실천적 증명이야말로 인간의 행복에 필요한, Doing주도에서 Being 주도로의 가치 전환의 흐름을 만들어 가게 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통역=유수양 일본히젠국립병원 정신과의, 정리=서주희 한의사·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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