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그리고 하코미세라피(Hakomi therapy) ①
상태바
화병, 그리고 하코미세라피(Hakomi therapy) ①
  • 승인 2013.11.28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주희

서주희

mjmedi@http://


특별기고: 일본하코미연구소 다카오 타케히로 대표의 ‘하코미세라피’ 강연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회장 구병수)가 지난 3일 국립중앙의료원 대강당에서 추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지난 5년간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진행된 화병임상진료지침에 대한 개발 결과 보고와 함께 일본하코미연구소 다카오 타케히로 대표를 초청해 화병을 일으키는 원인인 분노를 다루는 기술과 한일간의 문화차이에 따른 화병, 그리고 하코미세라피에 관한 특별강연이 있었다. 유수양 일본 히젠국립병원 정신과의사의 통역으로 주요 내용을 옮겼다.  <편집자주>

안녕하십니까. 제겐 여러분들과의 만남에 앞서 한의학에 대한 ‘위대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허준>이 그 주인공입니다. 저는 ‘허준’이라는 드라마를 두 번 봤고, 지금 세 번째로 다시 보고 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감동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허준이 일생을 통해 실현코자했던 심의(心醫)로서의 자세와 정신은 제게 위대한 가르침과 열망으로 남아있습니다.  

지난 봄에 저는 한의학의 탁월함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울에 체류하던 중 갑작스럽게 시작된 심한 요통이 몇 번의 침 치료를 받고서 말끔히 나아 버린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수 개월에 걸쳐 정형외과 치료를 받았을 것이 그렇게 간단히 나아버렸다는 것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제 아내도 2년 전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을 비롯한 전신의 통증 때문에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었는데, 한국에서 열흘간의 한방 입원치료를 받고서는 깨끗하게 나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의학의 기본 치료기술이라고 하는 침의 효과를 통해, 생명이 氣에서 비롯되고, 또한 내 몸의 형체를 유지하는 것도 氣의 작용임을 몸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번 학회의 테마이기도 한 화병에 대해 말씀 드릴까 합니다. 일본에서도 격렬한 분노와 그것을 표출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정신증상과 신체화 증상이 있는데, 한국의 화병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 일부 일본의 정신과 의사들 중에는 이것을 ‘화병’이라는 한국어로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이 병은 일본에서도 생기고는 있지만 일본어로 된 병명이 붙여져 있을 만큼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는 병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반대로 외국에서도 일본어가 그대로 사용되는 병으로서는 이지메, 대인공포가 있습니다. 일본에 화병 환자가 적다는 것과 이지메나 대인공포,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가 많은 것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양쪽 모두 각각의 문화의 영향으로 생겨난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본 문화의 독특한 전통적 정서 중, 화병이 적은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가장 큰 부분은 ‘체념’과 ‘지나가게 내버려두기’ 라는 문화적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또 한가지는 집단에 의존하고 동조하는 모성원리가 한국에 비해 강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일본이 1945년 미국에 의해 점령되기까지 과거 약 1500년간 외국에 의해 침략을 당하거나 지배 받은 적이 없다는 것, 그러나 빈번히 거듭되는 태풍이나 지진, 쓰나미, 화재 등의 자연 재해를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정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외국의 침입을 받으면 도망가거나 싸울 수 있겠지만, 자연재해는 대항할 수가 없기에 그냥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가능한 한 빨리 재건하는 것밖에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자연 재해에 대해 그렇게 대응해 가는 가운데 자신에게 안 좋은 상황을 초래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체념해 버리게 되는 자세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는 올 봄에 약 두 달 반 동안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혼자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때 경험한 신기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곳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제 컴퓨터가 떨어져서 망가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게는 익숙지 않은 감각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는 지진이 올 것을 항상 상정해 두고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오늘일 수도 있고 또는 10년 후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가 되었든 어디선가 덮쳐 올 것이라 상정하고 있는 긴장감이 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신 바와 같이 2년 전 일본의 동북지방을 덮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원자력발전소의 재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18년 전에는 대규모 지진과 화재가 고베 지방을 파괴시켰습니다. 그 이후 고베 다음으로는 도쿄나 후지산이 있는 시즈오카현이 위험하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동북지방에서 천 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하는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곳에도 언젠가 어찌해볼 수 없는 재해가 일어날 것이라는 각오와 긴장, 그리고 체념의 심정을 마음 속 깊이 안고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태풍은 한국보다 세 배에서 다섯 배 정도 많이 발생합니다. 태풍에 대해서도 역시 체념하거나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체념’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라는 자연재해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세는 대인관계에도 스며들어 있습니다.

662년 나당연합군에 대항하여 백제를 돕기 위해 백마강 전투에 참가한 이후 일본에서는 신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후쿠오카에 성을 축조하는 등 약간의 긴장은 있었으나 그 이후 약 600년간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큰 전쟁 없이 평화가 계속되었습니다. 귀족들의 관심은 오로지 출세와 연애, 시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정치 실권이 귀족과 천황에게서 무력을 가진 무사들에게 이전된 후 한동안(150년간)은 권력을 둘러싼 무사들의 내전이 이어졌습니다. 그 시대는 예외적으로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잘 하고 싸우거나 다투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무사들뿐만이 아니라 서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대의 일본인들은 싸움에 익숙해졌고, 그들을 이끌 강한 리더가 생겨났습니다. 그 싸움의 승자,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만해져서 중국까지 지배할 수 있다고 과신하면서 조선을 침략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전의 신이라 불리는 이순신에 의해 저지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일본을 지켜왔던 바다가 이번에는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지키게 해준 것입니다.

그 후 250년간 일본에는 평화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의 시기 동안에도 지진이나 화재는 에도 즉, 지금의 도쿄나 오사카를 반복해서 덮치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재해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집단 안에서 눈에 띄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평화로운 일상적 삶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듯합니다. 지배층인 관리직 무사도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 ‘큰 과오 없이’ 제 역할을 완수하도록 유념하고 있었습니다. 히데요시 시대에 생겨난 강한 리더십은 일본에서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일본의 신들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신은 여신인 것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서구문명의 식민주의를 경험하며 바다가 더 이상 일본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일본 군부는 국내에서 혁명을 일으켜 오만하게도 거꾸로 바다 너머 조선, 중국을 침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나라를 이끌 진정한 지도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히데요시도, 일본 제국주의 군부들도 지금까지의 일본 역사 속에서 다소 이질적이었지만 일본인들의 집단에 대한 의존과 동조, 강한 것을 마주하게 되면 체념해버리는 정서, 모성원리적 문화의 전통을 바꾸지 않았으며, 군인들조차 반대로 그것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통역=유수양 일본히젠국립병원 정신과의, 정리=서주희 한의사·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계속>


하코미세라피란?

‘하코미’는 본래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뜻을 가진 호피 인디언의 말이다. ‘일상의 여러 가지 측면을 대하면서,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기도 하다. 하코미세라피는 Mindfulness와 Loving presence를 기반으로  하는 심리치료법으로  Mindfulness는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명상법으로, 잔잔한 호수와 같은 마음상태를 뜻한다. Loving presence는 모든 존재의 가장 빛나는 면을 의도적으로 바라보고, 사랑의 장으로, 사랑 안에서 치유되고 성장하는 것을 뜻한다.
하코미는 미국 콜로라도 주에 본부가 있으며 현재 미국 각지뿐 아니라 유럽 각국, 남미, 오세아니아에도 보급이 되어 왔다. 아시아에는 1995년 즈음부터 소개돼 왔으며 한국에서는 2002년에 시작됐다. 
하코미는 동양사상 특히 도가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것을 각종 카운슬링 이론, 최면요법, 바디워크, 유기시스템 이론과 현대 서양에 있어서의 인간탐구 방법을 통합한 포괄적 심리요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