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한의원! 인류학의 연구 대상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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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한의원! 인류학의 연구 대상이 되다
  • 승인 2021.03.05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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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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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암은성한의원 원장이자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암한방의료봉사단 위원장이며, 서울 중랑구한의사회 수석부회장이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도서비평┃한의원의 인류학

한의사 : 어디가 편찮으셔서 오셨어요?

환자 : 허리도 아프고요, 어깨도 아프고요. 무릎도 아프고 전신이 아파요~

한의사 : 그래요? 그럼 제가 맥을 우선 보겠습니다. 두 손을 올려주세요.

환자 : 이렇게요? 혹시 진맥할 때 말해도 되나요?

한의사 : 편하게 하시지요. 혹시 무슨 일을 하시지요?

환자 : 택배회사 물류 센터에서 밤에 일해요.

한의사 : 맥을 보니 몸이 차서 병이 왔네요. 감기 초기 증상처럼 전신에 한사로 인한 통증 맥이 잡히네요.

환자 : 네 맞아요. 안 아픈 구석이 없어요. 종합병원이에요.

한의사 : 원래 밤에 일하면 한기(寒氣)가 잘 들어와서 아픈 법입니다. 낮에 일하는 직업으로 바꾸시는 것이 좋지만 당장 바꾸기는 힘드시겠지요. 일단 제가 치료해드릴 테니 꾸준히 내원해주세요!

환자 : 원장님 잘 치료해주세요~

한의사 : 김 간호사님 치료실로 모셔주세요!

 

김태우 지음, 돌베개 출간

필자가 진료할 때 나누는 대화이다. 나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것도 연구 대상이 되나 보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 교실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김태우 교수는 우리 한의원에서 열흘 넘게 와서 진료하는 것을 참관하였다. 동료 한의사와 학생들에게 진료현장을 공개한 적은 가끔 있지만, 인류학자에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김태우 교수와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 나는 우리 학회의 학생 강의를 부탁했고 청강해본 적이 있다. 인류학자로 바라본 한의학에 대해 강의를 해주었다. 서양 철학적 관점에서 한의학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였고, 서양의학과 다른 의학으로 한의학의 존재 의미를 주제로 토론할 수 있었던 귀한 자리였다. 당시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김태우 교수의 강의를 극찬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 교수는 한의학과 한국의 한의원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였고, 이번에 『한의원의 인류학』이라는 신간을 출간하였다. 심란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뚫고 나와서 더욱 값지다. 어떻게 한의원과 인류학이 만날 수 있을까? 정말 제목에서부터 궁금하다.

김태우 교수는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할 적에 중국이나 일본의 동아시아의학보다 한국의 한의학이 연구가 안 되어있는 것을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의학과 서양의학이 양분되어 공존하는 한국의 독특한 의료 형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의료체계 속에서 한의학은 어떤 모습이며 서양의학과 다른 특징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있다.

그는 서양의학은 ‘고정’의 의학이지만 한의학은 ‘흐름’의 의학이라고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서양의학은 절대적인 의학이고 한의학은 상대적인 의학이다. 따라서 양방에서 양의사는 환자의 병을 컴퓨터 속의 사진으로 단면만 보지만, 한의원에서 한의사는 진맥과 이목구비를 이용하여 환자와의 관계 속에서 병의 원인을 찾아낸다.

결론적으로 김 교수는 의료에는 정답(正答)이 없고 정답(定答)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몸은 다양한 생명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료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몸을 바라보는 관점, 그 관점에 바탕을 둔 언어들의 연결성 위에서 지식과 행위의 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일부 양의사들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의학을 무시하거나 폄훼하는 행위는 인류학적으로 몰상식하다. 그냥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공부하는 한의학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한의학이 중요한 의학 치료 체계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표준화라는 핑계로, 세계화라는 이유로, 통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의학을 경시하고 말살하는 작업이 있다면 저항해서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왜냐면 한의학이 사라진다면 하나의 몸을 바라보는 사고 체계가 없어지는 것이고, 말이 없어지는 것이고,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앞으로 김태우 교수가 한의원 문을 똑똑 두드린다면 언제든지 나의 진료현장을 보여주자. 2만여 개의 서로 다른 다양한 한의학을 그가 연구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도록 하자.

 

정유옹 / 사암침법학회,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정유옹
서울 사암은성한의원 원장이자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암한방의료봉사단 위원장이며, 서울 중랑구한의사회 수석부회장이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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