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비마다 함께한 책…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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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비마다 함께한 책…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기제”
  • 박숙현 기자
  • 승인 2020.07.23 0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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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람을 잇다(5) 김영선 여한의사회장

어린 시절 시골에서 ‘새농민’ 잡지부터 세계문학까지 탐독…의료‧일반 서적 독서 습관

인생의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직도 가야할 길’-‘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등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책, 사람을 잇다’에서 이번에 만나본 한의계 다독가는 김영선 대한여한의사회 회장이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25년째 태창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이기도 한 그는 “환자를 통해 인생의 길을 먼저 가볼 수 있어서 좋다”며 “환자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의 독서생활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시골로 전학을 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버지의 출판사업이 거듭 실패하면서 친가로 낙향하게 되었는데, 당시 친가 골방에는 전집류부터 세계 각 나라를 소개한 사진이 많이 담긴 책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낯선 환경에서 그는 혼자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생활에 대해 “시골로 전학을 가니 친구도 없고 너무 심심했다. 서울에선 내가 시험에서 평균 90점 이하를 받으면 혼내곤 했던 엄마도 시골 생활에 적응하느라 내가 안중에도 없었고, 집안만 뱅뱅 돌면서 너무 심심하고 무료해서 글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고 회고했다. 이어 “처음엔 신문소설, ‘새농민’ 잡지, 가족계획 잡지 등을 심지어 Q&A까지도 읽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읽었는데 그래도 지금 기억나는걸 보니 이해가 안 되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며 “가족계획 방법에 대한 질의라던가 ‘새농민’의 농약 이름들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또한 “작은 글씨의 세로줄이라 읽기 힘들지만 조금씩 골방의 문학전집들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읽은 책은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폭풍의 언덕), 헤르만 헷세의 ‘황야의 이리’ 등이 기억에 남는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어려운 책을 더듬거리다가 대학생이 된 언니가 가져온 ‘그리스 로마신화’는 신세계였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지금도 굽이굽이 구절들과 그 낡아진 책 가장자리도 기억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그 엄청난 서사와 독특한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문학 작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 계기”라고 덧붙였다.

김영선 회장은 평소 의료인으로서 의료관련 서적과 나 자신이라는 개인을 위한 일반서적을 각 한 권씩 끼고 산다고 했다. 그는 “마음이 힘들고 안정되지 않을 때 책을 찾는 편이다. 책은 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기제”라며 “신문이나 여타 잡지의 도서소개를 주의 깊게 보며 읽을 책을 고르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메모하고, 책으로의 도피가 필요한 시점이 오면 몰아 읽는다. 최명희 작가나 한강 작가처럼 자신을 갉아내며 쓰는 듯한 뼈골 서린 느낌의 글을 좋아한다. 통찰의 지혜를 주는 철학 서적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자신의 인생에서 책이 마음의 양식이자 동반자, 치유제였다고 고백했다. 아이들을 키우고 진료도 한창 바쁘던 시기에도 책이 위로가 됐다고 한다.

그는 “신경림 시인의 ‘갈대’에서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비슷하게 사는구나 싶기도 했고, 문학이 어떻게 사람을 어루만지는지 그 가치를 깨닫게 해준 시”라고 전했다.

수많은 책과 인생을 함께해왔다는 김 회장에게 인생의 책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아툴 가완디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언급했다. 전자는 불완전한 현대의학에 대한 의료인의 고뇌를 그렸으며, 후자는 환자의 존엄을 지키는 죽음에 관해 다루고 있다. 김 회장은 아툴 가완디의 책에 관해 “평소 관심이 많던 분야였는데 여러 사례를 접하면서 내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나의 삶에 이정표가 된 자극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제롬 그루프먼이 의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진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소개하는 ‘닥터스 씽킹’에 대해 “증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정보를 놓치지 않으며 퍼즐을 맞춰나가는 세밀함과 집요함이 인상적이었다. 내게 진료의 이정표가 된 책”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통증의 역사와 그 근원을 찾기 위한 과정을 다룬 멜라니 썬스트림의 ‘통증 연대기’도 소개했다.

그러나 그가 “삶의 동반자로 고비를 넘게 해준 인생의 책”이라고 표현한 책은 모건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이었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심리치료 현장에서 만난 환자의 사례를 통해 삶에서 마주치는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데 필요한 ‘자기훈육법’을 소개하고 있다.

 

 

김 회장은 “육아와 진료로 바쁘던 시기에 제목만 보고 마음이 쿵 내려 앉아 한참을 보고 있었다. 삶을 관용하고 감수하며 흘러가게 하는 지혜와 위안을 얻었다”며 “동질감으로 위로하고 삶을 관조하게 해주며 바른 길로 가이드를 해주어서 힘이 났다”고 고백했다.

이외에도 그는 김용규의 ‘철학 카페에서 시 읽기’와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도 인생의 책으로 언급했다. 특히 장석주의 책에 관해서는 “기억에 대한 강박이 책읽기의 즐거움을 방해한다며 망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구절이 나의 독서에 힘을 빼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삶의 고비를 같이 넘어준 책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묻어있어서 책과 함께 지난 시절을 회상하게 한다”며 “앞으로도 어떤 친구들과 시간들을 꾸려 나갈지 고민된다. ‘아직도 가야할 길’인 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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