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20> - 『山經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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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20> - 『山經抄』②
  • 안상우
  • 승인 2020.06.20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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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지식

『산림경제』의 이종사본 혹은 개편본이라 할 수 있는 이 특별히 자료에는 복거와 攝生, 다음으로 服藥이라는 항목을 두어, 神仙服餌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어 治農조에서 治圃항에 있는 채소 재배법을 다루고, 種樹조에 화초재배법(養花)까지 포괄되어 있다. 養蠶이나 牧養, 治藥, 잡방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지만, 별도 주제 분류 없이 소항목으로만 구분하여 차례대로 열거해 놓았다.

◇ 『산경초』
◇ 『산경초』

다만 辟瘟과 辟蟲(辟虫之方으로 구분), 救急에 이르러서는 분명하게 장절을 두어 분리하고 章題 아래 저자의 짤막한 의미 부여도 실려 있어 매우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구급 뒤에 구황을 두어 질병이나 기근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쓸 수 있는 응급대처법을 배치해 놓은 것이 특색이 있다. 이렇듯 다소간 변형된 구성 체제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등사자의 편집의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상 개편된 체제를 통해 대체로 이 책에는 전반부에 복거로부터 섭생, 치농, 종수로 이어지며, 생활상식과 농업(과수, 축목)에 기반을 둔 가정경제에 필요한 필수지식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에 비해 벽온으로부터 벽충, 구급으로 이어지는 후반부에는 장절 구분도 분명하고 의약지식에 기반을 둔 구체적인 전문지식을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앞쪽 부분과 분명하게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등사자가 전래된 『산림경제』를 저본으로 하되, 기존체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기준으로 필요사항을 재편하여 또 다른 구성방식을 택한 결과로 보인다.

특히 권미에는 養眼方이나 痢疾神方, 丹毒方, 初瘧良方 등과 여러 가지 단방법, 경험방 등이 다수 별첨되어 있다. 또한 간혹 한글로 기재된 경험방이나 한글로 향약명을 표기한 단방법 등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 여기 수록된 처방법들이 매우 실증적으로 오랫동안 누적된 경험지식에 의해 기술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부록편에는 별지로 移葬吉凶知法이라든가 葬時坐山避殺法, 躍馬渡江法, 斗首葬擇法, 斗首與化氣假令論, 裁衣吉日, 財物出入禁斷日, 杜士春成造運 등 택일길흉법에 대한 내용도 여러 가지 채록되어 있어, 당시 민중들의 일상적인 관심사와 관련 지식들이 어떠한 일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를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다.

한편 잡방조에는 조금 희한한 처방법이 눈길을 끈다. 밤길에 도깨비불을 피하는 방법, 산길을 갈 때 귀신을 피하는 방법 등등. 그중에서도 ‘避難止小兒哭法’은 난리를 피해 달아날 때 어린애가 보채고 울다보면 적에게 들켜 해를 입기 십상이므로 굶주린 아이를 달랠 묘책을 적은 것이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다소 황당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로선 횡액을 피할 수 있는 방도인 셈이다.

방법은 솜을 조그맣게 구슬처럼 뭉쳐 감초 달인 물을 적시거나 혹은 달콤한 맛을 지닌 즙액에 적셔 애 입안에 가득 차게 넣어주면 그 단물을 빨아먹고 입 안 가득 솜뭉치가 들어 있어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다는 아이디어다. 다만 이 때 부드러운 면이나 솜뭉치를 써서 입안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의사항이다.

사실 이것은 避難大道丸과 함께 『동의보감』구황조에 避難救飢方으로 등장하는 방법이다. 구황을 단순히 旱魃이나 홍수같은 기상재해만을 의식해선 안 된다. 전쟁이나 난리로 인해 부득이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방책이 될 수 있다. 이런 내용들이야 말로 임진정유 왜란과 병자정묘 양대 호란을 거치면서 생존지식으로 얻어졌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때마침 어린 시절 6.25동란이라고 배운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어느덧 70주년이 되었는데, 다시 경색된 남북관계를 걱정해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돌이켜 보게 되는 구절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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