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17> - 『醫方撮要』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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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17> - 『醫方撮要』②
  • 안상우
  • 승인 2020.05.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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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典醫들의 좌절과 亡國恨

이 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가 光武10년(1906)에 신식 연활자본으로 인쇄하여 펴낸 勅撰醫書라는 것을 지난 호에 말한 바 있다. 저자 이준규 서문에는 이런 정황이 언급되어 있다. “… 惟我皇上陛下, 用是之憂思, 欲於群書中, 刪繁取簡, 去冗得繁, 撮其最切於對症投劑者, 以裒輯之, 使賢愚皆得, 而易於爲用也. 詔臣擔其役, 臣遂敢不揆僭越 …” 이로보아 고종황제가 당시 황실전의로 있던 이준규에게 직접 찬집을 하명하여 이뤄진 것임을 알 수 있다.

◇ 『의방촬요』
◇ 『의방촬요』

본문의 첫 면에는 저자 이준규와 함께 朴準承이란 이름이 較正자로 병렬하여 기재되어 있는데, 관함은 ‘通政大夫 太醫院兼典醫 咸平郡守’로 밝혀져 있어 편찬 당시 애초부터 내의원에서 몇몇 사람의 전의들이 함께 주도하여 진행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박준승(1847~1924)은 동시기 대표적인 소아과 전문의서 『소아의방』에서도 교열자로 이름이 등장하고 『마진비방』에 서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 역시 典醫司典醫를 지낸 인물로 곤양, 죽산, 시흥, 함평군수 등 외직을 거쳐, 1900년 내부 위생국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의관이다. 하지만, 1914년 총독부 강압에 의해 의생 신분으로 격하된 채, 망국의 의관으로서 일생을 마쳐야 했다.

3편의 서문 다음으로 목록이 붙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醫原이다. 이러한 항목은 종래 조선의서 찾아보기 힘든 경우로, 한일합병 이후 역사적 인식에 대한 필요성이 오히려 강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어 운기, 경락, 장부, 진맥, 형색 등 기성 의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기초이론에 해당하는 조목들이 차례로 열거되어 있어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목록에 드러난 조목들은 대표항목을 가려적은 것일 뿐 본문에서는 훨씬 많은 수의 세목들이 들어 있다. 다만 목록에서는 이들을 부류별로 합해 뽑은 것이다. 예컨대, 진맥항만해도 제맥체상, 사시주맥, 장부본맥, 기구인영맥, 천화맥, 대연수맥, 상한맥법, 잡병맥법, 부인맥법, 成童脈法, 옹저맥법, 사맥총결, 형색맥상응총결, 팔요맥 등과 같이 다양한 소주제로 구분하여 기술해 놓았다.

또 寒賦는 傷寒賦를 소자쌍행으로 세밀하게 기재하였고 운기주병, 오운주약, 육기주약 등 오운육기 용약법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특히 용약법에 있어서는 尹東里가 지은 『草窓訣』의 잡병용법을 채택하여 수록해 놓은 것이 매우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의사학자 김두종이 지은 대표작『한국의학사』에서는 최근세의학사에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의학저술로서, 이 책과 夢庵 崔奎憲(1846~?)의 『小兒醫方』을 들어 기술해 놓았다. 최규헌 역시 式年醫科를 거쳐 내의원에 들어가 활약한 인물로 어의를 지내고 외직으로 三登군수를 지냈으나 한일합병 이후 의생 면허를 다시 받아야했으니 심정이 오죽했으리라 싶다. 어의 출신인 이들은 사설의학강습소에서 다음 세대를 기다리며 교육에 투신하였다.

하지만 김두종은 이 책에 대해 “근세조선 최후기 고종의 명으로 펴낸 칙찬 한의서로서 그 전통을 자랑할 수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특색 있는 독자적 견해를 찾아볼 수 없고, 종래의 의설과 치방을 간편하게 분류정리한데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목차를 통해 단순 비교한 피상적인 견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성 재래방서와의 차이점이 한눈에 드러나지 않고 실용에 편리함만을 취해 요약해 놓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이 책의 특장은 광범위한 부분에서 전개한 方論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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