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당신은 환자에게 어떤 이야기의 씨앗을 심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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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당신은 환자에게 어떤 이야기의 씨앗을 심어줄 것인가.
  • 서주희
  • 승인 2020.01.10 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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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신이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마라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던 환자가 있었다. 일과 육아를 완벽히 병행하려 하기 위해 지쳐버렸고, 병든 아버지의 간병으로 자기를 돌볼 새가 전혀 없이 인생을 달려왔던 그녀였기에, 죽을 것 같은 질식감과 공포감은 그러한 힘든 내면의 표현이었을 것이라. 몇 번의 상담을 통해 관계성이 형성된 그녀에게, 어느 날 지금이다 싶어 “제가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릴 테니, 한번 잘 들어보시겠어요?”라고 말을 던졌다. 그 즉시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류시화 지음, 더숲 출간
류시화 지음, 더숲 출간

그날 이후 그녀는 깨달은 바가 있었고, 증상은 나아져 더 이상 환자로 오지 않게 되었다. 한참을 지난 어느 날 손수 만든 향초와 편지를 전해주어서, 그녀가 이제는 자신을 잘 돌보며, 삶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인간에게 있어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이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탐구하는 과정에 있어 살아있는 예시이자,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전달받을 수 있는 지혜라 할 수 있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부터 천일야화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에 대한 인류의 호기심과 욕망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존재해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질리지도 않고 이야기에 탐닉하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설화와 신화들. 이 모든 것이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사실 요즘 들어 스토리텔링 수학이니, 스토리텔링 기법이니 하면서 새로운 교육이나 경영기법으로 여겨지는 듯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했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 왔지만 오늘날 미디어의 변화에 의해 새롭게 부상하게 된 이야기 방식이다. ‘스토리(story)’가 ‘무엇’이라는 내용을 나타낸다면, ‘텔링(telling)’은 ‘어떻게’라는 형식을 나타낸다.

최근에 일컬어지는 스토리텔링은 1995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디지털 스토리텔링 페스티벌’에서 처음 사용되어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현재는 최초에 적용된 디지털 미디어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폭넓게 외연을 확장해 활용되고 있다. 이제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BTS역시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성공작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스토리텔링 기법은 미디어 뿐 아니라 치료의 영역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특히나 트라우마를 겪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에게는 인생의 의미를 되찾게 하며 재구조화하는 목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사용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인생사를 후퇴하게 만들고,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정체감을 재건하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세상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경험 속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발견하면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뇌는 미러뉴런을 통해 그 어떤 자료보다도 말로 하는 이야기 내용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이야기는 뇌 전반에 영향을 미쳐 언어, 지각, 시각, 운동영역까지 반응한다. 스토리텔링은 이러한 뇌의 공명능력을 정신과 치료에 적극적으로 응용하기 위한 기법인 것이고, 따라서 치료적 의도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시행할 때는, 뇌의 모든 영역을 쓸 수 있도록 최대한 오감을 자극하는 표현과 감정, 신체감각 등을 느끼게 하면서 지혜로운 생각을 심어줄 수 있도록 섬세히 그 판을 짜는 것이 좋다. 그 전에 치료자 환자와의 안전 안심감이 있는 관계성의 확립이 기본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스토리텔링을 치료의 재료로 쓰기 위해서는 변증을 해서 탕약 처방을 내듯이, 여러 가지 테마에 따른 이야기들을 미리 준비하고 잘 기억하고 있다가, 치료자-환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이야기 씨앗이 잘 심어지고 발화할 만한 찰나를 잡아 쓰윽하고 던져주는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미국과 인도 등지의 명상센터에서 생활하고, 매년 인도를 방문하며 그 과정에서 겪은 일들과 얻은 교훈들을 모아 산문집과 잠언집들을 모아내었다. 그의 책들은 무궁 무진한 스토리텔링들로 가득하다.

이번에 출판한 이 책은 인도의 우화집인데, 류시화 본인이 저자로 되어있지만, 자신은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들과 종이에 기록된 인도 이야기들을 다시 풀어썼으니, 이야기 수집가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인도의 우화이지만, 낯선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도 단박에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수많은 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씨앗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공황장애 환자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치료자라면, 그러한 상황의 환자에게 어떤 이야기의 씨앗을 심어줄 것인가.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M&L심리치료 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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