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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66> - 『香訣』
썩은 종기를 藥香으로 감싸다
2019년 04월 27일 () 06:00:03 안상우 mjmedi@mjmedi.com

처음 이 책을 마주했을 때, 『향결』이라는 낯선 제목으로 인해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가벼운 흥분마저 느낄 정도였다. 혹여 佛殿에 쓰이는 焚香 儀禮를 적은 것인가, 아니면 『동의보감』잡방문에 등장하는 香譜를 정리한 책인가 싶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본문의 내용을 열어보고 나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인해 다시 한 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향결』

왜냐하면 본문 첫 면에 ‘鄕藥集成方卷第四十’이라 적힌 권수제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 세종임금이 토산약재와 우리 체질에 맞는 처방만을 골라 집대성했다는 바로 그 책 『향약집성방』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구나. 이렇게 너무나 예쁜 책이름을 지어 붙인 필사자가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이전에도 간혹 필사한 家藏本에 선대로부터 전해진 傳稱이나 雅稱을 붙인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우아한 책이름을 붙일 생각을 한 사람은 아마 몹시 결이 고운 마음씨를 지녔을 것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소책자에 겉표지도 장정하지 못한 채 종이끈으로 질끈 묶은 모습이 소박하게만 여겨졌지만 정성만은 시공을 넘어 봄내음이 물씬 풍겨 나오는 듯하다. 표제 아래 권호가 地로 붙은 것으로 보아 원래는 3책으로 베껴 썼을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중간권 단 1책 뿐이다. 첫째 권이 아니어선지 목차나 필사기 같은 것조차 보이지 않으니 어찌된 사연인지는 가늠해 보기 어렵다.

현전본 권두에 놓인『鄕藥集成方』제40권은 옹저문으로 ‘辯癰疽證候好惡法’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어 ‘辯癰疽宜灸不宜灸法’, ‘辯癰疽宜鍼烙不宜鍼烙法’ 등 변증론과 침구 및 火烙法의 적증과 부적합 증상을 논변하는 글이 실려 있다. 이어 癰論, 疽論으로 나누어 옹과 저의 치료법이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열거되어 있고 그 다음으로는 石癰, 肺癰, 腸癰, 胃脘癰 등으로 구분하여 치법 각론이 기술되어 있다.

또 癰有膿, 熱毒癤, 癰疽淋洗, 緩疽, 瘭疽, 附骨疽, 發背, 發背貼脅, 發背寒熱, 發背潰後, 蝕漏瘡, 發腦, 甲疽 등의 각종 창종을 비롯한 외과 질환에 대한 치법, 치방이 일일이 열거되어 있고 침구법 항을 별도로 두어 전문적인 외치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 그 뒤를 이어 一切毒腫, 風腫, 游腫, 一切丹毒, 丹니, 便毒, 丁瘡(魚臍丁瘡幷附) 등의 항목이 들어 있어 가히 옹저창종 질환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치료지식을 망라하고자 하였던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껴볼 수 있을 정도이다.

여기에 수록된 치료법들은 대개 병증 항목마다 총론에 있어서는 『聖惠方』,『聖濟總錄』,『直指方』,『外科精要』등의 이론을 먼저 앞에 제시하였고, 치료처방이나 처치법에 있어서는『瘡科精義』와 같은 외과전문서의 구체적인 치료법을 인용하거나 선대 방서에서 간단명료하고 효과가 확실한 치방들을 발췌, 선별하여 사용하되 조선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로 조성된 것을 우선하여 선정한 것이다.

이와 관련 『향약집성방』의 편찬의의와 여말선초 향약의약의 성취에 대해서는 강연석의「향약집성방의 의사학적 연구」를 일독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중국에서 마황탕, 계지탕을 기반으로『상한론』처방이 널리 사용되었지만『향약집성방』에서는 마황이나 계지뿐 만 아니라, 심지어 감초가 들어간 처방조차 흔치 않다고 지적하였다.

나아가 그 이유를 자국산 약재 생산 장려와 당재 처방의 기피와 관련하여 해석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14~15세기 조선왕조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한 향약개발과 향약의서 편찬 사업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어디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화창한 봄날, 향기 가득한 들판에서 아이들 손잡고 약초로 쓰이는 산야초 몇 가지 찾아보는 것도 가족나들이에 빠트릴 수 없는 볼거리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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