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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우리는 모두 환자가 되는 것일까
도서비평┃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탈모, ADHD, 갱년기의 사회학
2018년 10월 19일 () 06:00:33 안세영 mjmedi@mjmedi.com

얼마 전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새까만 머리카락이 울창한 수풀을 이뤄 갑자기 동안(童顔)으로 바뀐 친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본디 숱이 많지 않은데다가 사십대 초반에 ‘주변머리 속알머리’ 가리지 않고 빠져, 삐까뻔쩍 빛나는 정수리로 ‘밝은사회운동’을 주도하던 놈이었는데, 가발 하나로 인해 10년 이상 젊어보였거든요. 아침저녁으로 썼다 벗었다 불편하지 않느냐 물었더니, 늦둥이가 다니는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젊은 아빠로 보이려면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고 겸연쩍게 웃더군요. 심미적인 측면 말고는 아무런 불편 증상이 없는데, 연고를 찍어 바르고 알약을 집어 삼키며 논에 모 심듯 머리카락을 이식하는 등 소위 ‘의학적 개입’을 취하기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운 방법 아니냐면서….

   
피터 콘래드 著, 정준호 譯, 후마니타스 刊

아시다시피 남성의 대머리 혹은 탈모는 남성갱년기, 발기부전과 함께 대표적인 남성성의 ‘의료화(medicalization)’ 사례입니다. 예전에는 나이 들면 머리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근력도 떨어지며 성기능 또한 시원찮아지는 걸 당연하게 여겼는데, 언젠가부터 이런 것들이 소위 ‘의료화’ 됨으로써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놀랍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별 것 아니던 사소한 문제가 의학적 용어로 정의되고, 의학적 언어를 사용해 서술되며, 의학적 틀을 적용해 이해되거나 의학의 개입을 통하여 치료되는 등 ‘의료화’에 따라 질병 혹은 장애로 탈바꿈하니….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The Medicalization of Society)』는 의료사회학 분야의 권위자인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콘래드(Peter Conrad) 교수의 작품입니다. 그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은 1975년부터 ‘의료화’와 관련된 주제로 30여 년간 천착해 온 자신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인데, 여기에는 지금까지의 의료화가 초래한 사회적 결과와 의미가 무엇인지 낱낱이 밝혀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거의 100%가 병원에서 태어나고(게다가 두 명 중 한 명은 제왕절개로), 75% 정도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며,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국민건강보험 실가입자수를 무려 260만 명 이상 능가하는 등 삶의 거의 모든 과정이 의학의 관할 영역에 들어있는 실정이니,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죠?

책은 3부로 나뉩니다. 1부 「개념」에는 의료화의 정의·배경·특성 및 의료화에 따른 사회적 변화에 대한 총괄적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2부 「사례들」은 남성의 갱년기·탈모·발기부전, 아동과 성인의 ADHD, 항노화와 성형수술, 경기력향상, 동성애 등 오늘날 의료화/탈의료화의 주요 사례들을 자세히 분석한 내용입니다. 3부 「한계와 결과」에서는 의료화를 이끄는 주체들과 동력의 변화, 그리고 의료화가 사회와 문화뿐 아니라 의료와 제약 산업 전반 및 환자(소비자)에게 초래할 결과들을 서술해 놓았습니다. 모두 흥미진진해서 책장이 저절로 넘어갈 텐데, 끝까지 읽고 나면 이런 의문이 뒤따릅니다. “이러다 결국 모든 사람이 환자가 되지 않을까?”

의학의 확장, 곧 ‘의료화’에 의해 개개인의 정체 모를 심신의 고통이 비로소 질병으로 간주되고 적극적으로 치료되며 사회적 승인까지 얻는다는 건 분명 굉장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인간 기능의 다양성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들도 병리화 함으로써, 삶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관용마저 갉아먹지는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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