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憂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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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憂慮
  • 승인 2018.09.22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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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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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7일, 『민족의학신문』 제892호에 [‘8체질론의 창시자’ 권도원 박사 긴급 투고]라면서 권도원 선생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은, 1999년 12월에 온누리교회의 기관지인 『빛과 소금』에 마지막 칼럼을 게재한 이후에, 13년 만에 공식적인 매체에 권도원 선생이 직접 기고한 것이다. 이 글은 권도원 선생이 가진 아쉬움과 걱정, 두 가지를 담고 있다.

 

(1) 아쉬움
권도원 선생은 8체질론과 8체질의학을 창시(創始)했다. 아울러 인간의 요골동맥 안에 감춰져 있던 여덟 가지의 체질맥(體質脈)을 발견했다. 체질맥을 통해서 8체질을 감별하는 것이 체질맥진이다. 그런데 체질을 감별하는 체질맥진을 숙련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임상의마다 체질맥진의 기술수준이 다르게 되고, 동일한 사람을 두고서 저마다 다른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까닭에 그 연유를 알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과연 8체질이 존재하는지’ 8체질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懷疑)를 품게 할 수도 있다.   

권도원 선생은, 8체질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니까 노력을 한다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쉽고 정확한 체질감별법이 발견’되리라고 믿었다. 만약 이런 체질감별법이 발견된다면 세상은 8체질론을 쉽게 인정하게 될 것이고, 8체질론이 대중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그래서 먼저 맥진기계 개발에 매달렸다. 2002년 5월 16일에 연세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권도원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체질은 반드시 여덟 개, 8체질, 그것이 바로 체질입니다. 그래서 이걸 발견해 이제 체질을 감별하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훈련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려야 되고, 정확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에요. 그러면 이걸 기계화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 40년 동안 기계화에 노력을 했습니다. 불란서 사람도 사용해 보고, 미국 학자도 사용을 해보고, 우리 KAIST에도 두 번이나 계약을 해서 연구해 보았으나 안 됐습니다. 서울대학에서도 그랬고. 여러 번을 했는데 다 실패를 했어요. 난 틀림없이 그게 되리라고 믿는데 아직 안 돼요.

맥진감별기계 개발에 실패한 후에도 약물이나 효소, 유전자 검사를 이용해보는 등, 체질맥진이 아닌 다른 감별방법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것이 권도원 선생이 지닌 아쉬움이다. 

 

(2) 걱정
권도원 선생은 이 글에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중환자 치료처방들이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흘러나갔다”고 주장하면서, “중환자 치료처방은 기본방이 있고 같은 체질의 병이라도 병증에 따라 기본방에서 변화된 임상방이 처방전에 기록되는 것”인데 이 처방들이 무분별하게 알려져서 ; 1) 미숙련 한의사에 의해 남용되는 경우, 2) 체질감별의 오류로 환자에게 끼칠 치명적인 피해, 3) 잘못된 치료행위로 인해 실제적인 폐해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8체질의학의 존폐까지도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 야기될 수 있다고 걱정하였다.

권도원 선생이 이 글에서, 8체질론을 모르는 것처럼 일을 처리한 ‘H한의원 소속 모 한의사’라고 지칭한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러니까 내가 권도원 선생이 쓴 처방전에 기록된 ‘중환자 치료처방’을 빼내어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렸으며, 그로 인해 향후에 위와 같은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다. 

 

(3) 내용증명

나는 『민족의학신문』과 『한의신문』에 「체질침 고단방의 구조와 구성 원리」에 관한 특강 광고를 냈다. 그 때는 2013년 2월 3일(일)에 한 번, 서대전역에 있는 회의실에서 특강을 여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신문에 광고가 나간 후 2013년 1월 31일(목)에 모 법무법인의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 날(31일) 내게 ‘내용증명을 발송했는데 아마도 토요일까지 전달되지 못할 것 같으니 내용을 팩스를 통해 미리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내용증명의 제목은 ‘경고문’이었고, 특강을 개최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4) 체질침 고단방(高段方) 자료 수집

나는 2009년 11월에 『학습 8체질의학』을 펴낸 후 1년여 동안 체질침 고단방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런 계기가 된 자료가 있는데, 부산지역에서 수집되고 정리된 자료였다. 자료에 등장하는 부산지역 임상의들은 모임을 통해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경험과 견해를 제시하고 의견을 나누었던 것이다.

최경규는 『8체질』에서 고단방을 해석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내용을 인용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최경규가 책에 실은 내용은 그의 고유한 의견이 아니기 때문이다. 체질침 고단방을 이런 식으로 분석한 사람은 바로 죤백(John Baik)이다. 시중의 임상가에 퍼져 있고, 또한 편집되고 일부 정리되어 있는 고단방 관련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죤백의 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다.    

(5) Missionary John Baik
죤백은 UBF(University Bible Fellowship) 소속의 한의사인데, 미국에 선교사로 가기 전에 권도원 선생의 제선한의원 진료실에서 참관할 기회를 얻는다. 죤백은 이때 보고 들은 고단방 정보들을 자기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런 후에 미국에 가서 1995년이나 1996년쯤에 자료를 정리해서 한글 파일로 만들었다.


이 파일들은 2000년경에 미국에서 죤백을 만났던 조재의(趙載宜)에게 전달되었다. 조재의가 한국으로 와서 신기회(新紀會)를 조직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이 자료 중 일부가 그를 통해서 조금씩 유통되었다. 그리고 조재의와 친밀했던 Peter Yoon도 자료 일부를 획득하게 된다. 이 자료들은 다시 Peter Yoon과 교류가 있던 최경규와 조병제를 통해서 부산지역 임상의들에게 전달되었다. 부산은 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8체질 임상의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지역이다. 그래서 고단방 자료와 정보들이 더 적극적으로 유통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이 결합되면서 자료가 축적되고 정리되었을 것이다.         

 

(6) 두 번째 내용증명
나는 특강에서 발표한 내용의 바탕이 된 고단방 자료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입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권도원 선생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도 않았다. 권도원 선생은 「8체질치료에 관하여」를 기고한 후, 신문의 해당 면을 복사해서 첨부한 두 번째 내용증명을 보냈다. 오늘 나의 글은 두 번째 내용증명에 관한 때늦은 답변이다.
권도원 선생은 글의 말미에 “좀 더 기다려서, 때가 오면 기쁘게 가르칠 수 있고 기쁘게 배울 수도 있을 터”라고 했다. 하지만 그를 열렬히 추앙하는 무리에게조차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동호(東湖) 권도원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 참고 문헌
1) Missionary John Baik, 금양인을 중심으로 한 5단계 처방 연구_2
2) 『빛과 소금』 제177호 두란노서원 1999. 12.
3) [연세대학교 강연 녹취록] 2002. 5. 16. 오후 2-4시 연세대학교 새천년관
4) 8체질의학 ‘체질침 고단방’ 처방 구성 원리 밝혔다 『민족의학신문』 제887호 2013. 1. 24.
5) 이강재, 체질침 3단방의 성립 『민족의학신문』 제888호 2013. 1. 31.
6) 이강재, ‘기준 5단방’ 처방 구성 원리 『민족의학신문』 제889호 2013. 2. 7.
7) 권도원. 8체질 치료에 관하여 『민족의학신문』 제892호 2013. 3. 7.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육체적 개성론의 선구자 『빛과 소금』 제177호 1999. 12.

1994년 3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총 27회에 걸쳐 칼럼을 기고하였다.

2) 문맥으로 미루어 보면 이른바 ‘중환자 치료처방의 임상방’을 가리키는 듯하다.

3) 나는 권도원 선생의 경고를 무시하고, 『민족의학신문』 제886호(2013. 1. 17.)를 통해 광고한 것과 같이 「체질침 고단방의 구조와 구성 원리」 특강을 열었다. 참석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2013년 2월 2일(토)에는 동대구역에서, 2월 3일(일)에는 서대전역 회의실에서 강의를 했다.

4) 그건 나를 배려한 것이 아니고 업무 처리가 늦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내용증명은 특강이 이루어진 후에 월요일(2월 4일)에 도착하였다.

5)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권도원 선생은 신문에 난 광고 내용을 부원장에게서 보고 받은 즉시 변호사를 호출했다고 한다.

6) 모임 참석자들의 고단방 인식 수준은 사실 특별한 내용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7) 최경규 『8체질』 엘림 2009. 1.

8) 죤백은 1993년 11월 9일 롱비치 UBF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9) 권도원 선생은 자신의 진료실을 공개하는 것을 매우 꺼리는 분인데, 죤백이 오랜 기간 참관할 기회를 얻은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10) 난치병 치료처방인 고단방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분석한 자료들을 남겨 놓았다.

(한글파일은 3.0버전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11) 본명은 조재희(趙載熙)이다. 1962년생으로 20대에 신학생으로 선교트레이닝을 받았다. 1990년에 도미하여 하와이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LA에 있던 선교사의 보조로 LA로 이주했다. 장래가 걱정되어 경산한의대 LA캠퍼스에 입학했다. 1학기에 권도원 선생의 LA강연을 보고 충격을 받아 8체질론에 입문했다고 한다. 개명한 이름은 권도원 선생이 지어 준 것이다.

12) 신기회는 2001년 1월 15일에 상신한의원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13) Peter Yoon, Kyung Kyu Choi, Karp-Soon Rheem

「Effects of the 8 Constitution-Acupuncture on CD4 Counts in Patients with HIV」

Research Center, South Baylo University

14) 그 분은 스스로 그걸 흘려보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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