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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체질건강법』의 오해
2018년 05월 19일 () 07:44:58 이강재 mjmedi@mjmedi.com

개성(開城) 출신인 이현재(李賢在) 선생1)은 일제 강점기의 경성(京城)에서 꽤 저명한 사업가였다. 그는 포목(布木) 사업체인 흥일사(興一社)에 1924년 12월에 입사했는데 이듬해 7월에는 지배인이었고, 그러다가 1929년 1월에는 사주(社主)가 된다.

   
 

1940년 6월 26일자 동아일보에는 흥일사 사장인 이현재 선생의 장거(壯擧)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이현재 선생이 운영난을 겪고 있는 협성심상소학교에 양평에 있는 자신의 토지 30여만 평2)을 기부했다는 내용이다.

권도원 선생은 1958년의 어느날 여구(蠡溝) 혈이 포함된 침 처방으로 실명 위기로까지 몰았던 자신의 눈병을 스스로 고친다. 그 이전까지는 침술에 관심도 없었고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었다. 사상의약보급회에서 이현재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서 오가피가 들어간 처방을 먹고 증상이 개선되는 경험을 했고, 그래서 자신이 간(肝)이 약한 태양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여구 혈은 기존의 지식으로는 눈과 별 관계가 없는 경혈이었는데, 그가 맞았던 침 처방은 ‘간허증(肝虛證)’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가 이전에 사상의학을 공부하지 않았고 자신의 체질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자신의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간허증 치료처방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그는 혼자서 치료법을 찾았고3) 치료를 성공시켰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어서, 침술의 치료 원리와 효과에 대한 아이디어와 확신을 동시에 얻게 되었으리라고 짐작한다.      

권도원 선생은 사상의학의 병리를, 각 체질의 강한 장기와 약한 장기 사이의 불균형 심화라고 보았다. 그리고 사상인의 약물(처방)이 작용되는 원리를, 이렇게 심화된 불균형구조를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독창적인 침술인 사암침법(舍岩鍼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간허증 치료처방이 간이 약한 태양인에게 적용된다면, 태음인과 소양인, 그리고 소음인에게도 강한 장기와 약한 장기를 조절할 수 있는, 각각의 체질 특성에 맞는 침 처방이 구상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후에 오랜 연구 끝에 마침내 체질침(體質鍼)이 탄생했다. 아마도 1958년 말과 1959년 초 사이였을 것이다.  『8체질건강법』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선생님은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 기쁜 얼굴로 방에서 나오더니 가족들을 붙잡고 아픈 곳이 있으면 침 치료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역사적인 8체질침 이론이 드디어 탄생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위대한 연구는 의사 자격이 없는 선생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뒤늦게 이런 생각으로 잠이 깬 선생님은 당시 무역업을 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런데 사장실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생겼다. 친구의 비서가 들어왔는데 아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고질적인 항문출혈로 대변볼 때마다 벌건 피를 쏟는데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아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쳤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들은 선생님이 그러면 ‘내게 치료를 받아보겠느냐’고 하며 즉석에서 지니고 있던 침으로 간단히 치료를 해주었는데, 이 고질병이 다음날 감쪽같이 지혈된 것이다. 친구도 놀라고 비서도 너무 신기할 따름이었다.

권도원 선생은 스스로 찾은 처방으로 혼자서 눈병을 고쳤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 고안된 체질침으로 첫 환자를 단 한 방에 치료해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침술을 체질적인 원리로 운용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런 궁리를 통해서 고안된 체질침이 첫 치료에서 아주 훌륭한 치료효과를 나타낸 것이니 말이다.  

권도원 선생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위의 인용문에 등장한 ‘무역업을 하는 친구’가 황해도 출신으로 사무실이 남대문로에 있었다고 하였다.

   
 

1929년 9월에 경성의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가 열렸다. 이때 경성부(京城府) 내의 상점들이 박람회를 맞이하기 위하여 광고용 지도를 발행했다. 흥일사(興一社)도 빠지지 않았다. 아래의 그림에 보이는 지도의 하단에 흥일사 명판이 있고 지도 안에도 흥일사가 표시되어 있다. 그곳의 주소는 ‘京城府 南大門通 1丁目 113’이다.  

권도원 선생은 해방이 되자 간도(間島)에서 귀국했다. 그리고 전라북도 도지사 비서실장을 맡고 있다가 1954년에 돌연히 상경한다.  『8체질건강법』에 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종로 2가 다동 근처를 지날 때 선생님은 사상의학보급회4)라는 간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을 연구하던 이현재 선생을 만나 체질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두 분은 한국 최초로 사상의학회를 조직하였고, 선생님이 그 부회장을 맡아 서울에서 많은 강연회를 가졌다.


다동(茶洞)은 종로 2가와 가깝기는 하지만 종로구가 아니고 중구이다. 『8체질건강법』에 실린 내용은 전적으로 권도원 선생의 일방적인 구술(口述)과 기고문5)에 의존하고 있다. 권도원 선생이 ‘다동을 종로 2가와 연결하여 말한 것’은 일종의 트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래된 기억은 왜곡되거나 변형되거나 중첩될 수도 있다. 

   
 

이현재 선생이 한국전쟁 후에 사상의약보급회를 복원하고 또 사상회관(四象會館)이라고 불렀던 건물은 ‘서울시 중구 다동 85번지’였다. 독자들은 이쯤에서 예상을 하겠지만 이 건물의 일제시대 주소는 흥일사가 있던 ‘경성부 남대문통 1정목 113’이다. 그리고 위의 인용문에 등장한 ‘사무실이 남대문로에 있었던 무역업을 하는 친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현재 선생이다. 남대문로는 남대문에서 한국은행을 돌아 명동을 지나고 광교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동일한 책 속에서 한쪽에서는 친구로 등장한 사람이 한쪽에서는 선생이 된 것이다.

이것을 기억의 왜곡으로 볼 수는 없다. 이현재 선생은 권도원 선생보다 18년 연상이다. 또 이현재 선생은 권도원 선생의 기억 속에서 어떤 때는 친구가 되었다가 다른 쪽에서는 선생으로 착각되어 회상될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6)

『8체질건강법』을 엮은 사람들은 권도원 선생의 ‘말씀’을 검증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시각(視覺)에서 이 사례를 바라볼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위에 등장하는 ‘친구’와 ‘선생’이 동일인물일 거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명복 선생의 책7)과 함께 대중에게 아주 많이 알려졌다. 8체질론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의료전공자들도 8체질에 입문하려고 할 때 이 책을 많이 본다.8) 그런데 위의 사례와 같이 대중에게 왜곡된 정보를 심어주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 참고 문헌(자료)
1) 8체질의학회 『8체질건강법』 고려원 1996. 10.
2) 『미래한국』 〈357호〉 2009. 11. 18.
3) 『서울지도』 서울역사박물관 2006. 12. 20.
   p.148 경성안내도 9)
4) 1950년 6.25 직전의 서울 전경 사진
5)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근현대인물자료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1903. 4. 6. ~ ?(1973)

2) 당시의 시가로 30만원에 상당한다. 조선총독부의 통계에 따르면 1940년 경성에서 중품 쌀 100㎏짜리 한가마니는 28.35원(圓)에 도매되었다고 한다.

3) 어떤 자료도 참고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4) 정확한 명칭은 사상의약보급회(四象醫藥普及會)이다.

5) 1994년 9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총 27회에 걸쳐 온누리교회의 기관지(두란노서원 발행)인 『빛과 소금』에 연재된 기고문이다.

6) 1968년부터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질의학 전공으로 권도원 선생의 지도를 받았던 염태환 선생은“설날이 되어 선생께 세배를 가면 꼭 나를 대동하고 이현재 선생께 세배를 갔다‘고 회상하였다.

7) 이명복,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대광출판사 1993. 7. 8.

8) 이 책은 절판되었고,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배철환, 『8체질과 사상의학으로 풀어보는 몸』 산해 2002. 3. 5.

9) 1929년 9월에 경복궁에서 개최된 조선박람회를 맞이하는 상점의 광고용 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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