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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학, 인체의 자가치유 경로 연구할 때 훌륭한 방법론 될 수 있어”
침의 진통 효과, 진화론으로 설명한 정진용 한의사(대전대 둔산한방병원)
2018년 04월 26일 () 06:56:11 김춘호 기자 what@mjmedi.com

진화의학적 관점 접목 연구 진행된다면 치유법 찾는 새로운 길 열릴 것

 

[민족의학신문=김춘호 기자] 침의 진통효과의 기전에 대한 진화론적인 해석으로 통증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인체가 이에 적응하려고 뇌에서 하행성 통증 조절 경로를 진화시켰는데, 이 경로를 침치료법이 효과적으로 조절한다는 논문이 SCI 국제학술지인 Journal of Alternative and Complementary Medicine 2018년 3월호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이 연구를 진행한 정진용 전공의를 만나보았다.

 

▶진화의학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진화의학이란 다윈의 진화론을 근거로 해 다양한 신체반응을 해석하고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을 고안하는 학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존의학이 ‘어떻게’ 병에 걸리는지에 대한 근인(近因)에 집중한다면, 진화의학은 ‘왜’ 병에 걸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遠因)에 대해 고민한다.

예를 들어, 허리통증의 발병 원인을 기존의학은 추간판 탈출증이나 요추 염좌와 같은 직접적인 근골격계의 이상으로 보지만, 진화의학은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도록 진화하면서 척추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진 것을 그 원인으로 본다. 진화의학은 기존의학과 질병 원인에 대한 해석이 다르니 치료방향 또한 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일례로 진화의학자들은 기침이나 재채기는 인체가 진화시켜온 병원균이나 독소에 대한 자연적인 방어기제로 보고 이에 대한 치료를 권하지 않지만, 기존의학에서는 기침이나 재채기 자체를 질병으로 보고 치료하는 경향이 있다.

 

▶진화의학적 관점에서 침의 진통효과를 해석하는 국제논문을 게재했다. 진화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진화의학과 한의학은 과도한 대증치료나 무분별한 항생제 남용과 같은 인체의 자연치유경로를 방해하는 치료법들을 경계하고, 전인적이며 자연스러운 치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이러한 진화의학적 관점을 한의학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적용하면 여태까지 과학적으로 풀지 못한 한의학의 여러 이론들을 새롭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진화의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됐다. 특히 본 연구의 주제인 침치료는 어떠한 약물 개입도 없이 순수하게 인체의 자연치유경로를 활성화시키는 자연치료의 정수로서 진화의학이 추구하는 치료법에 완벽히 부합하여 더 관심을 갖고 고민해보게 됐다.

 

▶어떤 내용인지 다시 한 번 간략히 설명해 달라.

인체는 생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통증에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인체는 이에 적응하려고 뇌에서 하행성 통증 조절 경로를 진화시켰는데, 이 경로를 침치료법이 효과적으로 조절한다는 것이다. 통증의 종류는 크게 2가지로, ‘피할 수 있는 통증’과 ‘피할 수 없는 통증’으로 구분된다. ‘피할 수 있는 통증’은 피부에서 기원하는 자극으로 따끔하고 쏘는 듯 한 감각으로 뾰족한 것에 찔리거나 천적에게 물릴 때 발생하며, ‘피할 수 없는 통증’은 관절이나 근육, 내장기에서 기원하는 자극으로 둔하고 넓게 퍼지는 감각으로 배탈이나 관절염, 발목 염좌 등의 질환에서 발생한다. 흥미롭게도 질병에서 유래하는 ‘피할 수 없는 통증’이 발생할 때에는 뇌에서 ‘하행성 통증 조절 경로’라는 기전을 활성화시켜 통증을 감소시킨다. 즉, ‘피할 수 있는 통증’은 계속 인식되어 외부의 위협을 피하게 함으로서 생존에 도움이 되고, ‘피할 수 없는 통증’은 통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없어질 때까지 그 통증을 감소시키는 것이 생존에 유리함으로서 나타난 진화적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침치료는 피부를 뚫고 근육에 직접적인 자극을 가하는 치료법으로 ‘피할 수 있는 통증’과 ‘피할 수 없는 통증’을 동시에 일으키나, 주로 근육을 자극하여 ‘피할 수 없는 통증’을 일부러 유도해 ‘하행성 통증 조절 경로’를 활성화시킴으로서 효과적인 통증조절 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식체 등 다른 분야에도 진화론 적용이 가능한가.

물론 식체 등 다른 질환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표적인 침치료 이론 중 하나인 오수혈에서 정혈, 형혈, 수혈, 경혈, 합혈은 각각 적응증이 달라서, 사지말단부 끝에 위치하는 정혈은 주로 급성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되고, 체간부에 가까운 합혈은 주로 만성병에 사용된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정혈은 따끔하고 쏘는 듯한 ‘피할 수 있는 통증’을 주로 유발하고 합혈은 둔하고 넓게 퍼지는 ‘피할 수 없는 통증’ 주로 유발한다는 것이다. ‘피할 수 있는 통증’은 인체의 교감신경계를 항진시키고, ‘피할 수 없는 통증’은 부교감신경계를 항진시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정혈에 자침하면 교감신경계가 항진되어 심부전이나 졸도와 같은 급성질환에서 그 효과가 있고, 합혈에 침을 자침하면 부교감신경계가 항진되어 소화기증상이나 만성통증과 같은 만성병에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아직까지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해, 추후 더 연구하여 다시 한 번 논문 게재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진화의학의 관점이 한의학과 부합되는 부분이 많아 이번 연구는 어렵기보다는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진화의학은 그 특성상 실험설계가 어려워 아직까지는 이번 연구결과를 임상이나 동물 실험 등으로 입증하지 못한 점이다. 앞으로 진화생물학 등 관련학문을 더 공부해 단순 가설의 제시가 아닌 체계적인 실험적을 통해 침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해내고 싶다.

 

▶이 연구가 한의계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한의학은 수 천년동안 쌓여온 자연치료 지식의 종합체로, 특히 침술은 아무런 약물적인 개입 없이 인체의 자가 치유 경로를 조절하는 자연치료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침의 진통조절효과는 널리 알려져 연구되고 있지만, 여태까지는 침이라는 치료행위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침의 목적이 인체의 자가 치유 경로를 조절하는 치료법임을 고려하면, 인체와 인체의 자가치유 경로에 대해 보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진화의학은 오랜 생명의 역사가 축적된 진화과정의 이해를 통해서 신체반응을 해석하고 치료법을 고안하는 학문으로 인체의 자가치유 경로를 연구할 때 훌륭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바탕아래 이번 연구 결과는 한의학과 진화의학을 처음으로 접목시켜 한의학의 주된 치료방법인 침술의 통증 조절 기전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데 의의가 있다. 앞으로 침술을 비롯한 한의학 분야에 진화의학적 관점이 접목되어 연구가 진행된다면 적응과 조화의 치유법을 찾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현재 대학한방병원에서 수련중인 한방내과 전공의로, 손창규 지도교수 가르침 아래 임상과 기초연구를 같이 공부하고 있다. 진화의학 외에도 한의학의 새로운 연구방법론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스템 생물학과 장내 미생물학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임상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임상과 연구는 의학 발전에 서로 떨어 질 수 없는 관계인데,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지도교수와 둔산한방병원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한의학 발전에 보탬이 되는 임상의이자 연구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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