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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우리가 필요로 하는 거리
도서비평 | 당신과 나 사이: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 입지 않는 거리를 찾는 법
2018년 03월 23일 () 07:02:03 서주희 mjmedi@mjmedi.com

환자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대부분은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혼자 있는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혜남 著

메이븐 刊

행복은 결국 관계를 맺고 가꾸어 가는 과정이다, 그 관계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느낌과 두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친밀감이 존재하는 관계일 것이다. 30년간 진화론적으로 행복을 연구한 세계적인 행복심리학자인 서은국은 ‘행복의 기원’에서 이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 먹는 것이라고.

사람이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각자의 경계를 지켜주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당신과 나 사이의 친밀한 거리를 지키면서 관계하는 것.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너무 붙어있지도, 너무 떨어져있지도 않은 채 그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타인과 나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얼마나 될까?

경계선. 타인과 나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뜻한다. 경계선 성격장애에서 쓰이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이는 personal space라고도 하는데, 남에게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공간을 의미한다. 내가 안전, 안심감을 느끼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인 것이다. 이 안에서 사람은 자기 본연의 모습을 내보이고, 그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다.

M&L에서 경계선 워크라는 걸 한다. 휴지, 끈, 붕대, 스카프, 전선 등등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용하여 마인드풀니스 상태에서 자신이 느끼는 경계선을 만들어 보고, 그 안에 들어가 어떤 느낌인지 지켜보는 것이다. 경계선 밖에 타인을 세워두고 그 거리의 차이에 따른 느낌을 느껴보기도 한다. 여기서 만들어진 경계선의 모양과 크기는 정말 다양하다. 작은 원, 아주 큰 원, 2중으로 만들어진 경계, 알록달록 다양한 재료가 다 들어있는 원...

처음엔 다들 이게 뭐지 하는 심정으로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시작했다가도, 막상 워크가 진행될수록 알아차려지는 것들과 생생한 느낌 때문에 감정이 휘몰아치기도 한다.

아, 이것이 나의 경계였구나. 함부로 누군가 나의 경계에 들어온다는 게 이렇게 폭력적인 거였구나, 나의 경계를 지킨다는 게 이렇게 안심감이 드는구나 등등.

저자가 인용한 퍼스널 스페이스의 공간은 4가지 유형이었다. 먼저 밀접한 거리(Intimate distance zone)는 0~46cm으로 촉감이나 후각 등의 감각이 주요 소통수단이 되는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밀도가 가장 높은 거리이다. 이는 자기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거리이므로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그 다음은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 Zone)로 46cm~1.2m로 서로의 팔 길이만큼의 사이를 뜻하는데, 곧 손을 뻗으면 상대방을 잡을 수 있는 거리로 주로 친구와의 관계를 뜻한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Zone)는 1.2m~3.6m로 사무적이고 공식적인 성격을 띤다. 끝으로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 Zone)는 3.6m~7.5m로 개인과 대중사이의 거리로 연설이나 강의에 필요한 거리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그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으며 그 공간 사이에 반응을 선택할 힘과 지유가 있다. 그 선택 속에 나의 성장과 행복이 존재한다”고 했다. 마찬가지.

나와 타인의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사이에 반응을 선택하고, 그 선택 속에 관계의 성장과 행복이 존재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쉽고, 간결하다. 오랜 정신분석과 진료, 강연, 저술 등의 활동으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법을 아는 저자였기에, 딸에게 말해주듯 풀어내고 있어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인간관계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도 주저 없이 추천해줄 수 있는 책이다. 내용은 여타 심리학 서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작가가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상태가 어떤 건지 절감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를 힘겹게 써내려갔을 거라고 상상하지만, 그 노력과 대조적이리만큼 담담히 풀어내는 책의 내용이 먹을 땐 몰랐지만, 먹고 나서 자꾸 생각나는 평양냉면처럼 긴 여운을 준다.

죽은 여인보다 더 불행한 여인은 잊힌 여인이라 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거. 그것은 의미 있는 관계이자, 사랑이다.

영화 ‘코코’에서 코코의 아버지는 코코의 노화와 치매 증상으로 점점 잊혀져 영혼이 영원히 소멸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결국 그의 존재가 다시 기억되고 되찾게 된 것은 그가 딸에게 들려줬던 노래와 사랑. 그것이었다.

우리는 잊혀 지지만, 우리가 베푼 사랑은 잊혀 지지 않는다. 아주 작은 친절과 사랑의 한 몸짓은 우주 어딘가에 분명히 각인되어 전해지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 그 사이에 사랑이 존재 한다.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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