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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현효의 도서비평] 돈이 아닌 가치를 입힌다
도서비평 | 외길인생 (나는 대한민국 양복장이 박정열이다)
2017년 12월 08일 () 07:14:31 이현효 mjmedi@mjmedi.com

신약과 한약의 차이점이 있다면 한약은 환자의 체질과 상태에 따라 처방이 다르다는 점이다. 때문에 처방전에 있어서 고전이나 전범이 될 만한 레시피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구현은 환자에 따라 처방이 다르고, 미세한 가감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환자 한분 한분마다 받아가는 약은 다를 수 있다. 즉 한약은 맞춤, 주문제작인 탓이다.

   
박정열著
하움출판사刊

킹스맨이란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최근에는 ‘테일러샵’, 혹은 ‘비스포크 정장’이란 이름을 걸고 기성복이 아닌 맞춤양복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맞춤양복은 재단사가 신체치수를 재고 몸의 형태, 자세, 움직임을 파악하여 고객의 몸에 맞게 제작한다는 점에서 한약의 진맥, 처방과정과 동일하다. 근육이 붙어 탄탄한 몸, 유난히 팔다리가 짧은 경우, 어깨가 안으로 굽은 경우 등 사람들은 제각기 삶의 방식을 몸으로 나타내고, 재단사는 채촌(採寸)을 통해 미세한 몸의 균열을 읽고 고객의 인생을 오롯이 읽게 된다고 적었다. 책의 주인공은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실제인물인 비앤테일러의 박정열 대표이다. 그는 제목을 ‘외길인생’이라 적었다.

외골수이나 마에스터가 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동시에 든다. 오래전에 읽은 <어머니 저는 해냈어요>를 적은 김규환 명장은 초정밀 기계 가공에서 가공 후 치수변화를 알아내기 위해 2년6개월간 공장바닥에 모포를 깔고 잤다고 한다. 박정열 재단사의 노력역시 눈물겹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이 된다. 이후 여동생은 영양실조와 탈수로 세상을 떠났고, 살던 초가집에 불이나 모든 세간살이가 잿더미가 된다. 초등학교 졸업 후 외갓집에서 머슴살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상경하여 양복점에서 청소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일을 배운다. 고생고생하며 오랜 직원생활 후에 보령양복점을 열어 대표가 되지만, IMF가 닥친다. 정지버튼을 누른 듯, 경제도 사람도 시간도 생각도 멈춘 듯, 사람들은 맞춤양복보다는 값싼 기성복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월급을 제 때 주지 못하며 폐업위기를 맞지만 재기하여 두 아들들과 함께 ‘비앤테일러’로 키워낸다.

양복일은 바지-조끼-상의-코트 차근차근 배워나가게 된다는 점, 양복을 만들 때 정확한 재단과 꼼꼼한 바느질 실력만큼이나 다리미를 사용하는 기술도 중요하는 점을 설명해두고 있다. 다리미 온도는 옷감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고, 똑바로 줄을 잡아 말끔하게 다림질하는 것은 옷의 라인을 살리기 때문이다. 또 잘되는 집에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고객보다 나부터 먼저 내 옷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손님이 양복을 칭찬하더라도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며 한발 물러나 고개를 숙이더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양복을 맞추어 옷이 완성되는 시점을 잘 지키는 것. 잘되고 잘못되고의 차이는 작은 행동의 차이인데, 기술만큼 중요한 것이 신용이라는 점을 술회하고 있다.

한의원일도 마찬가지 아닌가. 기술과 신용. 예나 지금이나 성공의 요체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무섭게 노력하고 성공한 명인들의 글을 읽으면, 마음 한켠이 조용하게 타오름을 느낀다. 런던 새빌로우에는 수세기가 흘러도 고전미와 현대미가 어우러진 명품양복점들이 있다. 1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올드하거나 고루하지 않고, 새로운 유행이 탄생하고 탄생된 스타일은 다시 고전으로 굳혀져 가치를 지킨다. 우리도, 한방의료도 그래야 한다.

이현효 / 활천경희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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