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에서 폴란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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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에서 폴란드로
  • 승인 2017.08.1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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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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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박지훈 팀닥터의 2017 여자배구 그랑프리 결선 참관기 ①

 

2017년 7월 진료분 보험급여 청구를 하는 데 내 진료일수가 8일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7월 내내 여자배구 국가대표팀과 불가리아, 폴란드, 체코로 싸돌아다닌 탓이다.

여자배구 세계그랑프리 대회는 남자배구 월드리그와 함께 FIVB(국제배구연맹)에서 주관하는 국제대회로, 한국은 2014년 이후 3년 만에 참여했다. 2년간의 공백으로 패널티를 받아 2그룹으로 강등되었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오히려 1그룹에서 넘보기 힘들었던 순위권을 노릴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안팎으로 시끄럽고 뜨거웠던 7월을 진료실 밖으로 돌아다닌 어느 철없는 한의사 팀닥터의 출장 기록이다.
 

1주차 불가리아 루세
2그룹 A2조에서 함께 경기를 치르게 된 국가는 한국, 불가리아, 카자흐스탄, 독일이었다.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쳐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공항에서 내려 버스로 국경인 도나우 강을 건너오기까지 환승시간 포함 24시간이 꼬박 걸려 불가리아 루세에 도착했다. 
 

수차례 출장을 다녀 봤지만, 숙소가 도시 광장과 시청 바로 앞에 있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숙소 앞에는 동구권 특유의 기념탑과 분수대가 있는 광장, 그리고 숲과 벤치가 많은 공원이 있었다. 출장을 나오면 보통 경기장과 숙소를 버스로 이동하며 보낸다. 선수들과 항상 같이 있어야 하다 보니 개인 시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시내와 공원이 숙소 바로 앞이면 짬짬이 산책이라도 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 노릇인가. 7월의 불가리아는 햇살이 강했지만 그늘은 적당히 선선하고 음식도 기대 이상이었다. 다만 유럽에서의 경기는 역시나 시차적응이 문제가 된다. 인접한 국가인 다른 팀들과 달리 한국만 이동시간이 길었던 터라 첫 경기 독일전은 적잖이 부담이었다.

 

◇독일을 상대로 이번 대회 첫 승을 거둔 후 기념 사진.

그런데 웬걸. 이번 그랑프리대회 통틀어 첫 경기였던 독일 전에서, 첫 세트만 내주고 3:1 역전승을 거둬버린다. 1그룹에서 강등되어 내려와 2그룹 유력 우승후보였던 독일이었는데 말이다. 이튿날 불가리아에게는 5세트 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했지만, 마지막 날 카자흐스탄은 3:0으로 손쉬운 승리를 거둔다. 2승 1패, 게다가 불가리아전은 풀세트까지 간 덕에 승점1점도 챙긴 터라 첫 주차 출발이 나쁘지 않다. 스포츠 경기라는 것이 과정보다 승패의 결과에만 집중되다 보니, 첫 한 주 간의 우여곡절들이 세 번의 경기에 대한 한 줄 결과로 정리되고 마는 것이 못내 아쉽다.
 

팀닥터를 나와 보면 침 치료를 유독 잘 받는 선수들이 있다. 팀에서 고참이라든지 예전에 치료로 좋아졌던 경험이 있다든지 하면 보통 잘 받는다. 특히나 배구는 지도자들의 선수 시절부터 한의사 주치의가 익숙해 온 터라 한의치료에 친화적이다. 여자팀은 남자팀에 비해서 덜 아픈 치료를 선호하는 데다, 근골격계 통증 외에도 변비, 두통, 생리통 같은 내과, 부인과 질환들도 많이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유럽의 빵 위주 식단과 시합 전 예민한 상태가 겹쳐 변비가 많았다. 배변장애로 몸이 무겁다고 호소하는 경우에 복부와 빈용 되는 특정 경혈점에 침 자극이 도움이 많이 된다. 오죽하면 이후 경기일정 다 마치고 귀국하는 날 아침까지도 선수가 찾아와 복부에 침 치료를 한 번이라도 더 받기를 자청했을까.
 

센터 블로커들의 팔꿈치 손상은 배구 종목에서는 매우 흔하다. 과신전 상태에서 부하가 걸리면서 수근굴근이나 이두근건에 손상이 오기 쉽다. 여자 선수들의 경우 외반주의 형태가 있다면 내측 측부인대에 손상이 잘 오고 심하면 척골신경 주변의 부종으로 4,5지의 손저림이 나타나기도 한다. 치료는 봉약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테이핑으로 지지해 주면서 침 치료는 근위취혈과 원위취혈을 적절히 사용하게 된다. 이번 출장에는 중국 왕문원 교수의 평형침을 많이 활용했다. 무릎, 팔꿈치, 손목, 발목 등 관절 부위 통증에 대측 수족의 같은 부위에 침을 놓는 평형침은 다친 부위를 동기 시키는 방법을 병행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 인사말을 사용하는 것은 현지에서의 삶의 질 향상에 있어서 중요하다. “안녕하세요”와 “고맙습니다” 두 마디만 할 수 있으면, 호텔 직원들 뿐 아니라 경기장의 현지인들로부터 미소와 답례인사를 받을 수 있다. 불가리아에 와서 키릴문자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10세기경 불가리아에서 만들어져 현재 러시아어의 알파벳으로 쓰이는 문자다. 첫 주차 경기가 열린 불가리아 루세는 로마자로는 “RUSE”인데 키릴문자로 쓰면 “PYCE”이다. 키릴문자 P는 R로, Y는 U로, C는 S로 읽어야 하는 식이니 암호해독이 따로 없었다. 한 주 동안 현지 글자에 겨우 조금 익숙해질 만하니 다시 폴란드로 이동이다.
 

2주차 폴란드 오스트로비예츠
불가리아 루세에서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공항까지 버스로 이동, 폴란드 바르샤바에는 작은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숙소에 들어갔다. 폴란드는 6년 전 2011년 그랑프리 대회 때 바르샤바에서 4시간 거리인 지엘로나구라라는 도시에서 경기를 치루고 온 적이 있다. 당시에는 1그룹이었는데도 강호들을 상대로 3전 전승을 거둔 터라, 지금까지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 폴란드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던 게, 열렬한 응원과 동구권 특유의 야유 섞인 비매너 응원에도 불구, 한국 승리로 경기가 끝나고 나서 황연주 선수에게 깜짝 생일 축하 세레모니를 해준 주최 측의 배려와 폴란드 관객들이 진심어린 축하를 건네는 모습이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대회장 안에 마련된 포토존 앞에서.

훈련전후의 웜업과 스트레칭을 돕고, 숙소에서 마사지를 전담해주는 트레이너와 함께 출장을 갔는데 덕분에 주치의는 지시 감독만 하면 되니깐 역할이 줄어서 좋다. 하지만 선수들과 가까워질 기회도 줄어드는 격이기도 하다. 사실 트레이너 없이 올 때는 팀닥터가 트레이너 역할까지 도맡아 해왔었지만 여럿이면 역할을 분명하게 나눠 주면 된다. 이번은 트레이너와 함께였지만, 작년 남자팀 월드리그는 물리치료사인 FIVB 세라피스트도 함께 출장 다녔었다.

의무파트의 스텝이 많은 것은 선수들에게 분명 유익하다. 일본이나 독일 팀의 경우는 분석관 포함 스텝만 열 명에 달한다. 선수들 관리는 트레이너 또는 세라피스트와 상의하는 일이 많은데 팀닥터로서 전문적인 치료나 의학적 결정을 해줘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 이번 출장은 손목 결절종 흡인술을 하거나 피부염, 방광염, 구내염 등의 문제로 의학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아이스팩을 만들고 테이핑 붙이는 역할은 트레이너에게 모두 맡기고 의료책임자의 역할에 더 충실할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는 숙소와 경기장이 버스로 40분 이상 떨어져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선수들 체력관리를 위해서 연습경기를 쉬고 웨이트장에서만 훈련해야 하기도 했다. 유럽, 특히 동구권은 아침에 비해 점심 저녁이 부실한 편이 많다. 준비해간 한국음식이 2주차 때 떨어져 갈 즈음 한국 교민들이 전해주는 한국 음식들이 많은 보탬이 되었다. 그 덕택인지 폴란드에서 아르헨티나와 페루를 이기고 독일, 불가리아와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인 폴란드마저 홈에서 이겨 버렸다. 폴란드로의 두 번째 출장도 3전 전승이라는 쾌거를 이어가게 되었다.

감독이 예전 페루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인연으로 페루 선수들 중에 인사하는 이가 많았지만, 시합 마치기 전까지는 적장인 격이라 페루 스텝들 보는 앞에서 어색한 악수로만 반가움을 표현했다. 폴란드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페루 선수들은 옛 스승에게 포옹으로서 짧지만 애틋한 인사를 전했고, 스텝들은 물잔을 들며 한국 팀의 연이은 선전을 축하해줬다. 사실 페루 팀도 우리의 한일전과 다름없는 아르헨티나 전에서 승리해서 순위와 상관없이 축제분위기였다.

(다음 호에 계속)

글 - 박지훈 대한스포츠한의학회 의무이사(박지훈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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