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773> - 『漢方診斷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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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773> - 『漢方診斷學』①
  • 승인 2017.04.1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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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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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교육의 發展途上에서

 

◇『한방진단학』

근현대 한의학교육 과정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학습용 교재 한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은 관련 전문학자가 집필한 단독저술이 아니라 전문출판인의 손에 의해 편집된 이른바 출판사 학습교재인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문성이나 학술적 가치는 다소 손색이 있을지 몰라도 오히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한의계에 요구되던 필요지식을 잘 담아내고 간편하게 자가 학습이 가능하도록 정리하여 편집되었다는 점에서 참고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편저자 李成模는 행림서원 창업주인 杏坡 李泰浩의 뒤를 이어 출판사를 경영했던 2대 사주이다. 그는 한의학 전문서 출판이라는 기본방침을 잘 유지하면서, 일본인 침구학자 長濱善夫, 木下睛郞 등이 펴낸 『침구치료의 신연구』를 번역하여 『最新鍼灸處方集』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등 최신 연구동향을 보급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지만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새로운 책을 많이 발행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반세기 전인 1968년에 나온 이 책은 그가 펴낸 몇 안 되는 책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근래 대학가나 약재시장 근처에서도 점차 전문서점이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일제강점기 전문한의서 출판을 기치로 1920년대에 문을 열어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행림서원은 필자가 알기론 본격적인 근대 한의약전문출판사의 효시로 기억되며, 이제 그 의의를 조명할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책 제목인『한방진단학』이라는 서명은 지극히 고식적으로 보일 정도이지만 한자서명에는 韓醫學으로 개칭 이전인지라 韓方이 아닌 漢方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오래 동안 사용해오던 명칭이지만 그 유래에 대해선 그저 막연히 중국에서 유입된 의약을 말하는 것이기에 고대 중국을 대표하여 한나라 한(漢)자를 넣어 쓴 것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비슷한 용례로 漢學, 漢文, 漢藥 같은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모두 우리 전통학문이나 토산약재의 의미가 빠져있기 때문에 결정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어느 유학자의 오래된 문집을 보니 ‘漢方’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를 적어놓은 문장이 있었다. 설명인즉, 漢代에 이르러 그 이전에는 왕실이나 지배층만 사용할 수 있었던 약재를 시장을 통해 일반 백성들도 거래가 가능해졌기에 그 이후로 漢方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는 해설이었다. 다소 미심쩍은 생각도 있어 고증이 필요해 보이지만 우리가 韓醫學으로 개칭하기 이전, 한의학, 한의원, 한약, 한방 등 전통의약을 지칭하는 거의 모든 용어에 빠지지 않고 들어 있던 ‘漢-’이라는 접두사에 대해 그래도 한 가지 설명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서문에는 이 책의 편집자인 이성모가 남긴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전략) …… 18세기 말엽에 四象醫學의 신학설을 제창한 咸北의 동무 이제마공은 사상의학의 鼻祖이며 한국이 낳은 醫聖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海山 趙憲泳선생은 한의학의 개요를 탁월한 필치로서 과학적으로 分析究明하였다.”라고 말해 그가 인식하고 있는 한의학 발전과정의 주요 맥락을 엿볼 수 있다. 

즉, 그의 한의학에 대한 역사 인식은 겨레의 역사와 함께한 우리의학의 전통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명찬 『의방유취』, 『향약집성방』 그리고 허준의 『동의보감』에서 독자적인 동의학의 체계로 거듭난 이후 구한말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조헌영의 『통속한의학원론』을 통해 남긴 학술적 성취에 의해 재조명되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학술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재론하기로 한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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