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720> - 󰡔重編醫經小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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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720> - 󰡔重編醫經小學󰡕①
  • 승인 2016.03.1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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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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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포로 活字, 의학을 전하다


明代 劉純은 丹溪 朱震亨(1281∼1358)의 再傳 제자로 『醫經小學』이라는 의학입문서를 지었다. 그가 이런 책을 통해 단계의학의 정수를 전함으로써 金元四大 의학의 한 축을 이루었으며, 의학의 계통에 있어서 커다란 학파를 형성케 하는 큰 공을 이루었다. 나아가 조선 중기 『東醫寶鑑』편찬에 있어서 중대한 의학사적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중편의경소학』

이 책의 원작은 1388년에 처음 간행되었으며, 곧바로 조선에 도입되어 『醫方類聚』편찬에 있어서 당시로선 최신 의학서로 당당히 ‘引用諸書’의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러니 분명 조선 전기에는 이 책이 상당히 읽혀졌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동의보감』이후,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임진왜란 이후로는 조선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며, 그의 이름도 희미하게 잊혀져버리고 말았다.

오늘은 일본의 요시다 고쥰(吉田宗恂, 1558~1610)이라는 의학자가『의경소학』원문에 가나로 된 訓點을 덧붙여서『重編醫經小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간행한 중간본을 보면서 이 책이 동아시아 3국을 역전하며 의학발전에 기여한 바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허준과 거의 동시대 인물이자 유학자로서 일본 성리학의 개조라 할 수 있는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와 교유하였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후지와라는 정유재란 때 잡혀가 일본 학자들을 가르치고 훗날 그때의 경험을 기록한 기행문『看羊錄』을 집필하여 유명해진 姜沆(1567~1618)에게 깨우침을 얻어 僧籍을 버리고 학문을 닦아 유학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인연과 교유 덕분인지 요시다 고쥰이 집필한 『歷代名醫傳略』에는 다름 아닌 조선 선비 강항의 서문이 맨 앞에 붙어 있다. 요시다 고쥰은 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侍醫로서 法印의 지위에 올랐으니 당대 최고의 국수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며, 주로 당시 외국에서 넘어온 중국의학서에 정통하여 『醫方大成論抄』, 『萬病回春鈔』와 같은 저술을 남겼다.

그는 이 밖에도 1603년 이후 『본초강목』과 『증류본초』의 서례 부문만을 별도로 모아 단행본으로 꾸며 『本草序例抄』(전8권)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는데, 본초서례의 해설서이자 본초를 학습하기 위한 교과서의 강의록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정작 이 일본판 『의경소학』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 책이 갖고 있는 학술적 가치나 의학사적 의의에 앞서,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지다가 우연히 눈길이 간 이 고판본의 판면이 조선활자본과 너무나 흡사해 깜작 놀랐기 때문이다. 활자의 자획이나 판심과 어미, 그리고 판면을 구성한 모양새가 마치 조선판이라고 믿을 정도여서 눈을 부비고 다시 쳐다보아야 할 정도였다.

함께 동행한 서지전문가에 보였더니 이 책은 다름이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 약탈해간 조선활자를 섞어서 이용하고 인쇄공을 동원하여 일본에서 다시 찍은 책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른바 慶長活字刊本 혹은 (朝鮮)古活字版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으나 어찌됐던 이국에서 조선 책을 마주한 것처럼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현재 이 책은 궁내청 도서료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서는 9권12책으로 현전본은 완질이 아니고 일부가 결실되어 중간권(권5, 권8上)은 필서로 補寫되어 있다. 또 권9의 마지막 권미는 일부분이 결손된 채로 남아 있다. 이마저도 궁내청에서 珍藏하게 된 것은 역시 이 책이 매우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구성과 내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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