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사들은 왜 ‘한방의학’에 관심이 높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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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의사들은 왜 ‘한방의학’에 관심이 높을까
  • 승인 2014.07.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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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원

권승원

mjmedi@http://


[창간특집] 권승원 한의사 ‘제65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 참관기



초고령화 사회 일본, 인지증(치매) 관리를 한방치료로

 권 승 원
육군 한의군의관한방내과 전문의
일본 한방의학의 흐름 한눈에
일본 의사들 베이직 세미나에 몰려
400석 자리도 모자라 서서 경청

그동안 블로그 및 번역작업을 통해 일본 한방의학 자료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오던 차,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처음으로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에 참석했다. 65회째를 맞는 이번 학술총회는 도쿄에서 개최되었다. 실제로 대면하는 첫번째 학회이다 보니 많은 기대를 안고 참석했다.

이번 학회의 주제는 ‘인간적인 의학, 의료를 바라며, 아트(art)의 복권!’이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약 300여 편에 달하는 일반연제 보고, 각 질환에 대한 고전적 고찰부터 임상에서의 중요한 팁(tip)까지 다루는 각종 심포지엄, 워크숍, 기업에서 후원하는 알짜 정보의 보고 런천 세미나, 한방의학 초심자를 위한 베이직 세미나(Basic seminar) 등 알찬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간상 모든 프로그램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일본의사들의 한방’은 현재 어떤 것을 추구하고 있는지, 연구는 어떤 방향을 향해 진행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 참관기를 통해 부족하지만, 필자가 참석했던 프로그램을 위주로 이번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를 통해 볼 수 있었던 현대 일본 한방의학의 흐름을 소개하고자 한다.

초심자가 한 수 배우고, 원로·선배의사가 한 수 가르쳐주는 학회

6월 27일 첫 행사는 새틀라이트 심포지엄이었다. 첫 행사로 ‘증례로 보는 동서의학’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한방의학의 원로인 테라사와 카츠토시 선생께서 좌장을 맡은 ‘이럴 때는 한방약을-나를 감동시킨 증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강연장 가장 좌측에 좌장이, 그리고 나머지 연자들이 무대 앞에 앉아 있는 상태로 심포지엄이 시작되었다. 사실, 필자는 처음 보는 광경이라 그 무대배치 자체가 매우 신기했다. 각 연자들이 자신의 증례를 소개했고, 중간 중간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원로인 테라사와 선생의 첨언이 이어졌다. 그러한 팁을 많은 젊은 의사들은 필기를 하며 듣고 있었고, 때로는 좌장의 질문에 연자가 대답을 해가며, 심포지엄이 진행되었다. 단순한 증례 발표 및 질의응답이었다면,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텐데, 원로 격이며, 많은 의사들에게 존경 받고 있는 선배 의사의 살아 있는 실전 강의, 근거축적이나 문헌을 통해서도 다 배울 수 없는 임상의 팁을 이러한 심포지엄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면에서 꽤 부러웠다.

새틀라이트 심포지엄이 중급자 코스 정도였다면, 초급자 코스도 있었다. 베이직 세미나라는 강좌였다.                            

이틀에 걸쳐, 한방총론, 의사학, 호흡기, 생약약리/복약지도, 소화기, 신경내과, 피부과, 외과일반, 정형외과, 부인과, 정신과, 내분비대사, 이비인후과, 소아과 등 각 주제별 기초 강의가 있었다. 각 영역별 기본 처방 소개부터, 각 질환별 처방, 그리고 처방 감별법, 처방별 포인트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세미나였다. 우리 한의사들의 수준에는 꽤나 쉬운 내용일 수도 있지만, 처음 임상에 나온 후배들을 위한 강의로는 괜찮은 수준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필자가 재밌게 본 점은 이 베이직 세미나 강연장이 좌석이 모자라 서서 듣는 사람으로 강연장이 꽉 차 있었다는 것이다. 강연장 내 좌석이 얼핏 세어 보았을 때, 약 400석 정도였다. 그런데, 서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회장 밖 복도에 따로 의자를 마련해두었고, 모니터를 설치하여 강연을 듣고 있는 의사들이 있었다. 베이직 세미나 내용이 초심자들의 기초를 위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일본 내 의사들의 한방의학에 대한 관심도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의사들이 현 자신의 치료에 한계를 느끼고, 한방의학에 관심을 가져가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현실과 대조되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했다.

약재 내 유효성분 함량 증강을 이용한 새로운 시도

이번 학술총회에서는 억간산의 인지증 행동심리증상(BPSD)에 대한 효과를 토대로 발 빠르게 인지증 관리에 한방치료를 도입하는 흐름을 볼 수 있었다. 일본 내 한방제약회사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런천 세미나에는 총 7개 세미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중, 3개 세미나가 ‘인지증’을 주제로 한 세미나였다. 또한, 마지막 심포지엄 주제 역시 ‘인지증 처방 재고’였다. 그만큼, 일본 한방의학 관계자들의 많은 관심이 인지증에 대한 한방의학적 대처에 쏠려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필자는 이 중 2개 런천 세미나와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이중, 코타로 제약에서 마련한 ‘인지증에 대한 한방약의 가능성-치료 현장에서’라는 제목의 강연은 매우 흥미로웠다.

일본 내에서도 한방약과 침구치료를 모두 시행하는 의사는 흔하지 않은데, 그 둘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 세키 타카시 교수의 강연이었다. N진피라고 명명한 특별한 형태의 진피를 활용한 인지증 치료 임상연구를 소개했다. 진피는 억간산가반하진피에 포함되어 있어, 기존부터 인지증 환자 치료에 많이 활용되어 왔는데, 노비레틴(nobiletin) 성분이 일반 진피보다 다량 함유된 진피를 N진피라고 명명한 후, 인지증 환자에 대한 대규모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일단, 2013년에 발표된 pilot study를 소개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 11명을 대상으로 N진피 + 도네페질 복용군과 도네페질 단독 복용군으로 나누어 1년 간 치료한 결과, 병용군에서는 MMSE와 ADAS-J cog (Alzheimer’s Disease Assessment Scale-Cognitive Subscale) 점수 상 유의한 변화가 없었지만, 도네페질 단독 복용군에서는 두 항목의 유의한 점수 하강을 보였다고 한다. 더욱 재밌는 점은 동일한 함량의 노비레틴을 포함한 N진피와 노비레틴 자체의 효과를 비교한 결과, N진피의 효과가 더 우수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다성분계 복합적 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소개했다. N진피가 어떻게 탄생한 약재인지는 아직 비공개 상태라고 한다. 보다 좋은 효과를 내는 한방약 개발을 위해서, 기원 식물 및 관련 질환에 대한 유효성분 고찰 및 최적의 약재 재배 방식 개발도 추후 꼭 필요한 연구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지증 처방 재고’ 심포지엄에서는 총 4명의 연자가 각자 준비한 내용을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먼저 하마마쓰병원 신경과 이구치 히로노부 선생은 도네페질 개발 이전의, 일본 내 임상의가들의 인지증에 대한 처방들을 정리 발표했다.

잘 알려진 처방인 억간산, 억간산가감방, 조등산, 당귀작약산, 인삼양영탕 등의 처방이 활용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인지기능에 작용하는 도네페질 개발 이전의 의안들을 소개한 것으로, 대부분 처방의 목표가 인지기능 향상 자체에 쏠려 있고, 이 외에 부수적으로 이상행동에 대한 처방도 시행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후지타보건위생대학의 키시 타로우 선생의 억간산의 BPSD에 대한 효과 관련 발표가 있었다. 체계적 문헌 고찰 결과, mematine은 인지기능개선 및 BPSD의 개선효과가 있으며, 항정신병약 계열은 인지기능개선 효과는 없고, BPSD에 대해 미미하나마 효과는 있지만, 폐렴 발생률을 상승시킬 수 있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면, 억간산은 BPSD(특히 망상, 환각)에 유효하며, 인지기능 개선에는 무효했지만, 안전성은 확보된 약인 것으로 발표했다. 이후, 쯔쿠바대학의 미즈카미 카츠요시 선생은 기존에 발표된 억간산, 조등산, 황련해독탕 등 처방 관련 연구를 소개하였고, 마지막으로 야베 타케시 선생의 가미온담탕 관련 동물실험 결과 소개가 있었다.

이렇듯, 이번 강연은 문헌 고찰을 통해 인지증에 대한 과거 한방치료를 소개한 후, 현 상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 그리고 한방의학을 통해 대처할 수 있는 점, 한방의학의 근거를 소개한 후, 마지막으로 추정 기전까지 풀어가는 구성으로 한 자리에서 인지증 관련 한방치료를 정리할 수 있게끔 하였다. 또한, 일본처럼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국내 한의사들이 일본 의사들의 이러한 발빠른 행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증례의 보고 (寶庫) - 일반 연제

5~6개 회장에서 동시에 다양한 영역의 일반 연제 보고가 진행되었다. 300여개에 달하는 보고 중, 특히 눈길이 갔던 것은 일반 연제를 통한 다양한 증례였다. 워낙 동시에 여러 보고가 이뤄지기 때문에, 다 들어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미리 받은 ‘강연요지집’을 통해 주제 스크리닝을 한 후, 각 회장을 찾아다녔다.

필자의 전공 탓인지, 아무래도 ‘신경, 근질환’ 영역 보고에 관심이 갔다. 그 중에서도 하지불안증후군 (Restless leg syndrome)에 대한 ??薑朮甘湯 활용 증례, 같은 하지불안증후군에 滋陰降火湯을 활용했던 3증례, 그리고 파킨슨병 환자의 변비에 대한 麻子仁丸 활용의 유효성에 대한 증례 보고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필자에게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薑朮甘湯의 운용은 새로운 활용례라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도 6월 28일 정형외과 영역에서 첫 번째 순서로 발표를 했다. 은사이신 경희대학교 조기호 교수, 일본 도야마 北聖病院 漢方內科 고토 히로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부족한 일본어 실력에도 발표를 할 수 있었다. 필자가 발표한 주제는 NSAIDs나, 기타 물리치료에 반응하지 않던 족저근막염 치료에 ‘芍藥甘草湯’을 활용한 8증례 보고였다. 발표시간 6분, 질의응답시간 2분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가장 놀란 점은 시간 엄수 원칙이었다. 준비 단계에서도 발표 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발표하는 그 누구도 그 시간을 넘기지는 않았고, 좌장 역시 질의응답 시간을 명확히 지켜 운영함으로써, 학회 시간이 연장된다거나, 미뤄져 정해진 일정이 망가지는 일이 없었다. 다행히, 필자도 시간에 맞춰 발표를 마쳤다. 그런데 발표 이후가 문제였다. 필자는 2분간 많은 일본 참가자들의 질문에 진땀을 빼야했다. 사실, 부족한 일본어 실력으로 칼 같은 진행시간 엄수 원칙이 없었다면, 30분도 넘게 질문을 받아야 했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일본 의사들이 ‘정해진 매뉴얼대로 한방약을 사용한다’ ‘근거만을 중시하여 한방약을 사용한다’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질문내용은 ‘이분들이 정말 서양의학을 하는 의사인가’라는 생각을 들 정도로 철저히 변증시치 또는 한방의학적 개념과 관련되어 있었다.

 

◇일본 癌硏有明병원 모습.

일본 한방 암치료의 메카, 암연유명병원 방문

학술총회 첫날 일정 마무리 후, 도쿄대학 출신으로 현재 암연유명병원에서 소화기내과 및 통합한방진료를 담당하고 계신 호시노 에츠오 선생님이 근무 중인 암연유명병원을 방문했다. 호시노 선생님은 필자가 올해 번역 출판한 「동서의학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암치료」 (일본 원저명: 癌漢方)의 주요 저자 중 한 분이며, 「암연유명병원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한방을 통한 암치료의 기적」 「한방으로 극적으로 변하는 암치료」의 저자이기도 하다.

암연유명병원은 도쿄 내 노른자위 땅, 오다이바에 위치하고 있었다. 약 800병상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맨 꼭대기 층에는 완화치료병동이 위치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한방병동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는데, 한방치료를 적용할 인력이 부족해서라고 했다. 아직은 호시노 선생님 혼자 한방외래를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한방외래에서 각 병동에 있는 환자 또는 외래로 다니고 있는 환자들 중 담당의사로부터 한방치료를 권유받아 내원하는 환자들에게 한방치료를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암연유명병원 외 다른 병원에서도 항암치료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그리고 항암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한방치료 의뢰가 들어온다는 점은 놀라웠다. 실제 진료 차트도 볼 수 있었는데, 꾸준히 20~30명의 환자들이 외래로 내원하여 한방약을 처방받고 있었다. 결국, 암 전문 의사들 사이에서 ‘한방치료’가 유효함이 인정되고 있다는 것인데, 매우 부러우면서도 씁쓸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다음 총회는 일본 한방의 집산지 도야마, 주제는 ‘의료의 간선(幹線)을 목표로’

다음 학술총회는 일본 한방의 집산지 도야마에서 열린다고 한다. 다음 학회의 주제는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전개-의료의 간선을 목표로’라고 한다.

도야마 지방에 곧, 신칸센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동안 비행기로 도쿄를 왕래하던 곳인데, 이제 신칸센을 통해 2시간이면 다닐 수 있다고 했다. 다음 학회 주제가 이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은데,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보다 근거 집적도 많고, 더 폭넓은 한방약 의료보험 제도를 갖춘 상태이지만, 아직 일본 역시 동양의학이 의료의 ‘간선’이 아닌 ‘지선’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 학회의 주제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지만, 이번 학술총회 내내 동양의학을 ‘간선’으로 편입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우리 한의사들 역시, 추후 끝없는 노력을 통해, 한의학의 ‘간선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현실에는 여러 제도적 장애가 있다. 하지만, 일본동양의학회 같은 해외학회를 보면, 한의학을 포함한 동양의학의 효과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입증되고 있고, 많은 의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치료 역시 제도 개선 및 효능효과를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꼭 의료의 간선에 포함될 수 있는 한의학, 동양의학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학회를 기대한다.


*필자 주: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양의학 치료의 고유성을 인정하여, 한약은 한방약, 한의치료는 한방치료, 의학은 한방의학으로 정의하여 참관기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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