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그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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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그 다음은?
  • 승인 2014.02.0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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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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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 왕
부산대
한의학전문
대학원 교수
비록 사실상의 전제 왕정 국가라 할지라도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전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다음의 지배적 이념은 무엇이 될까? 예언이 아닌, 필자의 희망을 이야기해 본다면 크게 두 가지 이념이 다음 세상을 지배하리라 본다. 첫째는 종평등주의요, 둘째는 지식평등주의다.

종평등주의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등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뿌리 깊은 생각, 즉 종차별주의(speciesism)로부터의 벗어남이다. 합리성의 확장과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이러한 움직임은 넓은 지지를 받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통증을 수반하는 모든 동물실험이 사라지리라.

지식평등주의는 지식권력으로부터 발생하는 소외와 차별을 없애고 지식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대칭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이다. 과거 전제 왕정 시대에 권력의 중심은 혈통에 있었다. 오늘날 권력의 중심은 자본이다. 이제 그 권력을 지식을 가진 자들이 조금씩 나눠 가져가고 있다. 법대와 의대로 쏠리는 수험생의 지원 경향은 지식 기반의 전문직이 가지는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지금은 그저 기우일지 모르겠으나 지식 기반 사회가 완성되어가면서 지식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자연스레 사회의 중심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결국 미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지식 축적의 순기능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지식 기반 서비스 공급자와 그 수요자 사이의 대칭적 관계를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것이 안정적 사회를 만들어갈 열쇠가 될 것이다. 이번 시평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지식평등주의의 도래에 관한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한의사들이 오직 전문 지식의 장벽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만 골몰해 있다는 것이다. 한약은 그 기원에 있어 식품과 다르지 않고 침, 뜸 시술은 무면허자들의 방법과 확실한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확고한 전문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의사들의 지위는 부럽기 짝이 없다. 유형의 재산이라곤 별 것 없는 신세대 한의사들은 더더욱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전문 영역에 집착을 보일 수밖에 없다.

‘한약은 식품이 아니다’, ‘침 시술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 신세대 한의사들은 근거중심한의학의 선봉에 있다’ … 이런 모든 주장의 이면에는 전문 영역을 확보하고자하는 한의사들의 몸부림이 있다. 문제는 그 전문성이란 것이 모두 인위적 전문성, 만들어진 전문성이란 것이다. 솔직히 말해 참으로 부자연스럽고, 억지 같아 보인다. 지금까지 한방의료는 1차산업에 기반한 3차산업이었다. 이런 구조로는 아무리 포장을 그럴 듯하게 하더라도 억지춘양일 뿐이다. 2차산업에 기반한 구조가 어느 정도 형성이 되어야 자연스러운 전문 영역이 만들어질 것이다. 제형도 현대화해야 하고 천연물, 친환경만을 강조하지 말고 공장 생산품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구조도 구축해 가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전문가주의 자체에 대한 반성과 재고다. 전문가주의의 핵심은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한 자율적 의사결정권 확보에 있다. 그러나 미래에는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상호 견제를 하며 가격 결정을 하고 의사 결정을 수행하는 방식이 더 많이 요구될 것이다. 이때 한의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필자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80년대의 교과서에서는 지금의 양극체제가 점차 다극체제로 이행할 것이라 하였다. 단기적으로 볼 때 이 예측은 틀렸다. 오히려 세계는 미국 중심의 1극체체로 나아갔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볼 때 위의 전망은 점차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 과거 소련의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으니. 이는 과거 교과서 저자들이 대단한 예언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 당위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나의 희망이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지식평등주의가 이슈화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제 전문가로서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는 의사들을 따라 가기만 해서는 한의사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 한의사들이 의사에 앞서 한 수 앞을 준비하면 안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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