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67] 春鑑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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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167] 春鑑錄
  • 승인 2003.08.0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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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醫도 마다한 嶺南第一의 醫家指針


오래 전부터 필자는 이 책의 서명이 어쩐지 의학서의 제목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4계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면 夏鑑이나 秋鑑, 冬鑑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데 가만히 살펴보니 ‘춘감록’이란 서명은 저자인 이영춘이 바라본 『동의보감』 초록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혹은 「萬病回春」과 「東醫寶鑑」을 절록했다는 뜻으로도 새겨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저자의 상세한 풀이가 보이지 않으므로 확언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저자인 李永春은 호가 仁堂, 자가 樂天이며 본관은 慶州로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益齋 李齊賢의 後裔이다.

영남 일대에서 이름난 의원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당시 경상도 관찰사였던 柳逢春이 여러 차례 御醫로 薦擧했으나 번번이 사양하여 나아가지 아니하고, 오로지 자신의 수십 년 임상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저술하여 남김으로서 명망을 드높였다.

특히 그는 성인보다 몇 배나 고치기 어렵다는 부인병과 소아병을 잘 다스려 유명했다. 그 일례로서 孕婦 難産에 野莞(방동사니 풀)을 달여 마시게 해서 곧바로 順産을 이끌어 냈는데, 이것의 俗名은 한자로 ‘方童産草’라 표기하니 아이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임신부와 胎兒는 마치 옹기단지에 담아놓은 물위에 나무토막이 떠있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수저와 같은 형상의 맥으로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고 분변하였다.

이 책은 저술 후 곧바로 간행되지 못한 채 여러 사람에 의해 손에서 손으로 베껴보다가 원고가 이리저리 흩어지고 誤謬와 訛傳이 심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鄭瀅이 1926년에 작성한 서문에 의하면, 저자의 방계 후손인 李周榮과 圭東이 正本을 마련하고자 집안에 간직해온 원본을 꺼내어 중간한다고 밝혀 놓았다. 현재 전하는 印本은 1927년 경상북도 義城郡 舍谷面에서 발행한 연활자본으로 版心에는 ‘春鑑’으로만 되어 있다. 그 후 일제강점기와 건국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발행하였으며 1979년에는 小涯 孟華燮이 「동의보감」과 「방약합편」의 처방과 원출전을 일일이 찾아 정리한 手寫本을 영인하여 발행하기도 했다. 이 재편본에는 ‘寶鑑抄錄’이라는 부제가 달려있어 「동의보감」의 내용과 매우 밀접한 상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乾坤 2책으로 된 전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中風으로부터 시작하여 風비, 歷節風, 痛風, 破傷風 등 六淫 질환이 서두에 등장하고 이어 內傷, 虛勞, 곽亂, 嘔吐, 咳嗽 등 잡병이 먼저 소개되어 있다. 그 다음에 精, 神, 氣, 血로 이어지는 내경편의 내용과 頭, 面, 眼, 耳, 鼻 외형편의 병증각문이 수록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크게 보아 『동의보감』의 체제가 뒤바뀐 형태로 편배되어 있다. 또 그 뒤에 부인문과 소아문이 위치한 것은 동일하지만 諸傷과 救急은 맨 뒤에 붙어 있다.

병증각문에 있어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寒門의 앞에 傷寒審症口訣이 들어 있는데, 상한병의 변증요령을 암송하기 쉽게 정리해 놓은 것이다.

또 부인문에는 斷産, 斷子法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전에는 보기 힘든 내용으로 시대적 흐름과 사회적 요구에 따라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대개 그 원인으로는 婦人産育艱難, 母有宿疾, 胎不能安이라고 적혀 있으며 終身不孕, 斷産, 終身絶子 등의 효과가 기록되어 있지만 다소 전문가적 판단이 필요한 대목들도 있다.

또 병증문에 따라서는 通治藥(通用方), 食餌, 單方 등의 보조요법이 소개된 곳도 있고 때때로 「醫學入門」을 인용하여 변증요령을 정리해 놓은 곳도 눈에 띈다. 이 책은 「동의보감」과 「방약합편」을 중심으로 임상전과에 걸쳐 간단명료한 임증대강과 평이하고 안전한 처방을 수록하였으며 저자의 임상경험에서 우러나온 처방활용법을 제시하였다.

임상가의 활용도가 높아 비교적 근래에 이르기까지 두루 응용되었다. 하지만 저자의 의학적인 견해나 새로운 처방이 드러나 있지 않아 독창적인 면모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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