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당장 죽더라도 여한 없이 열심히 살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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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당장 죽더라도 여한 없이 열심히 살면 될 뿐
  • 승인 2013.12.0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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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http://


도서 비평 |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한 달쯤 전에 정년퇴직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강연 요청을 받았습니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노익장(老益壯) 발휘에 도움이 될 한의학적 비결을 알려달라는 것이었지요. “비결은 무슨 비결”이란 생각에 손사래 치다가 마냥 거절하기 힘들어, ‘도법자연(道法自然)’ ‘양로(養老)’ 등의 아주 평범한 내용으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만들어 한의학의 기본 이론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한데, 건강 강좌에 앞서 사회자가 연금과 관련된 주의사항들을 설명하면서 ‘여생(餘生)’이란 단어를 많이 쓰더라고요. 별 뜻 없이 말했을 텐데, 제 귀에는 자꾸 ‘잉여’라는 의미가 부풀려지며 왠지 부정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생(生)의 나머지라면 사(死)밖에 없다는 말이잖습니까?
데이비드 실즈 著
김명남 譯
문학동네 刊

올해도 얼마 안 남아 또 한 살 더 먹는구나 싶던 차에 강의 때의 느낌까지 더해 묘한 기분이었는데, 마침 즐겨 듣던 팟캐스트에서 맙소사!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란 책을 소개하더군요. 음∼, 이럴 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무조건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현재 워싱턴 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실즈(David Shields)가 쓴 이 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치는 생로병사(生老病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숙명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제목처럼, 인생 사계(四季)와 관련된 여러 가지 모습들을 온갖 통계적 수치들을 풀어놓으며 사실적으로 그려낸 책이지요.

가령 태어나서 죽기까지 우리 몸이 겪는 변화의 수치, 인구 집단의 질병과 사망 통계치, 수명 연장을 위한 각종 노력의 효과에 관한 수치 등등. 해서 일견 딱딱한 (서양)의학서적 혹은 과학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매우 유쾌한 자전적 인문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51세의 자신, 97세의 아버지, 그리고 꽃다운 열네 살의 딸이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저자의 자학적 폭로(자신의 성기 사이즈까지 공개한답니다 ^^*)가 연신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해주거든요.

책은 1장 유년기와 아동기, 2장 청년기, 3장 중년기, 4장 노년기와 죽음 등 모두 4장으로 구성됩니다. 인생을 동무공(東武公)마냥 유소장노(幼少壯老)로 구분한 것인데, 각 장에는 해당 시기별 의학 정보가 넘쳐나고 유명인들의 금언(金言)이 가득할뿐더러 지은이의 촌철살인 유머 또한 적절해서 읽는 맛이 아주 그만입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리게 만든 부분 - “유방암의 3대 위험요인은 초경에 이른 경우, 30세 이후에 출산하거나 아예 출산하지 않는 경우, 50세 이후에 폐경하는 경우이다. 한마디로 말해 때가 됐을 때 무대에 오르고, 주어진 대사를 읊고, 신호가 주어지면 퇴장하라는 말이다.” - 도 재미있었고요. 마지막에 나오는 글쓴이 부친의 말씀 - “늙는데 위안이 하나 있긴 있지. 이 일을 다시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죽는 건 쉽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그건 하잖니. 사는 게 재주지.” - 은 뭉클했지만서도….

삶과 죽음은 태극 속의 음과 양이기에, 죽음을 그리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일 당장 죽더라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열심히 살면 될 뿐! (값 1만3000원)

안 세 영 / 경희대학교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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