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약의보 논의하기 전에 먼저 명확하게 해야 할 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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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약의보 논의하기 전에 먼저 명확하게 해야 할 10가지
  • 승인 2013.07.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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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제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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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투고 2 : 제준태 한의사 “첩약의보 시범사업 협의 참여에 대하여”

1. 첩약의보의 명칭
첩약은 첩지라고 하는 종이에 초제(한약재)를 배합하여 1회분씩 포장한 것을 말한다. ‘한약’ 혹은 ‘탕제’ 등의 명칭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첩약은 전기탕전기와 파우치포장이 개발 되면서 이미 20여년 전부터 자취를 감춰 가고 있고, 한국에선 보기 힘든 포장 형태가 되었다. 혹시 첩약의보가 되면 첩지에 한약재를 싸는 진풍경이 연출 되는 것일까? 달여서 주면 비보험인가?

2. 첩약의보가 되면 정부의 인정을 받는 의료행위가 된다
치과의 스케일링이 보험 항목으로 결정이 되었다. 하지만 스케일링이 보험이 되기 전까지 정부 인정을 받지 못한 행위는 아니다. 이런 개념의 적용은 신의료기술 목록에 등재된 행위들 중 일부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적용 가능한 이야기다. 만약 정부 인정과 급여가 같은 이야기라면 아말감은 정부 인정을 받는 치료고, 골드는 인정받지 못 하는 치료란 것인가? 마찬가지로 약침, 추나, 탕제 모두 정부 인정을 받은 의료행위다. 보험 급여 여부와 정부의 인정은 별개의 이야기다.

3. 첩약의보가 되면 실비보험 문제도 해결된다
급여항목이라고 해서 반드시 실비보험의 적용이 되고 비급여라고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은 오해다. 예를 들어 뇌출혈을 보장하는 실비보험은 많지만 뇌경색을 보장하는 실비보험은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뇌출혈 환자는 건강보험 급여로 치료 받고 뇌경색 환자는 비급여로 치료 받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치과를 겨냥한 보험상품들은 비급여인 브릿지나 크라운 같은 경우까지 커버하는 상품들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실비보험은 상품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입할수록 그리고 돈을 지불하지 않을수록 유리하다. 한방의료기관 중 상당수는 의무기록이 취약하고 가격 근거 등이 불분명하다. 심지어 공진단을 대량으로 처방하기도 한다. 양방처럼 적정성 심사를 할 수조차 없는 환경에서 보험회사는 지불 자체가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방 의료기관 보장이 된다고 했을 때 더 많은 고객이 실비보험을 가입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필수 의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무시하고 단지 건강보험 급여만 되면 실비보험이 된다는 식의 접근은 동의하기 어렵다. 금감원 표준 약관에 한방 비급여는 보장에서 제외라지만, 탕제는 제외한다고 보험사들마다 약관에 넣으면 그만이다. 실비보험 상품은 철저하게 상업적 이익이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4. 첩약의보가 되면 수익이 정말 늘어난다
논란이 많은 문제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수익 변화를 예측해 내지는 못 하고 있다. 일단 분명한 것은 첩약의보와 동시에 한방 비급여 최고가 상품인 탕약의 ‘가격결정권’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첩약의보가 되었을 때 수익을 가정해 보자. 일단 분명한 사실은 환자 1명에 의한 수익은 감소된다. 그렇다면 감소된 수익 이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탕제를 처방 받으려고 할 것인가? 30명을 처방했을 때 얻었던 수익을 얻기 위해 40명에게 처방해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모든 한의원에서 이 10명을 더 늘리는 것이 오로지 보험이 적용된다는 한 마디로 가능할까?

일단, 환자 수가 늘어나든 늘어나지 않든, 분명한 사실은 있다. 모든 한의원들은 모두 동등한 가격을 제시하고, 환자들은 동일한 가격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당연하지만 그 혜택은 골고루 나눠지지 않는다. 인터넷쇼핑몰을 사용할 때를 생각해 보자. 같은 가격이라면 더 신뢰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만약 정말로 더 많은 사람이 탕약을 처방 받더라도 당신에게 간다는 보장은 없다. 같은 가격이면 더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같은 가격을 지불하고 얻는 만족도가 최대’가 되기 때문이다.

하루 처방 횟수 제한 같은 이야기도 무의미한 것이 사람들은 오랜 줄을 기다려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구매했을 때, 그리고 심지어 그렇게 기다린 후 구매할 때 더 만족도가 커진다. 괜히 한정판이 있고, 줄서서 기다리는 맛집이 있는 것이 아니다.

5. 첩약의보가 되면 정말 한약의 품질 개선이 되는 걸까?
고급한약재를 사용하는 한의원이든 싸구려를 쓰는 한의원이든 당연히 동일한 보험 급여를 적용 받게 된다. 그런 문제를 막으려면 약재비 하나하나를 다 공개하는 방향으로 보험 청구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처방전 공개는 필수가 되겠고, 분업하기는 정말 쉬운 조건이 완성될 것이다. 어쨌든 첩약의보가 되면 곧 정부가 관리하게 되니까 품질도 더 우수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지금도 식약처에서 의약품용 한약재로 인정한 것만 사용 가능하다. 품질 개선은 역시 첩약의보와 다른 문제다.

6.첩약의보가 되면 정말 국민들의 신뢰가 상승할까?
신뢰와 급여는 좀 다른 문제다. 의료보험이 된다는 것이 곧 국민의 신뢰가 회복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뢰는 보험이 된다 안 된다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긍정적인 홍보와 수준 높은 근거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7. 보험이 된다고 유효성을 인정 받은 것은 아니다
지금 보험의 과정에서 어떤 근거를 가지고 보험에 진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돈 남았으니 우리도 그거 좀 나눠 달라고 하는 건데, 보험이 된다고 유효성을 인정받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유효성은 임상 시험 등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첩약의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유효성을 인정받으면 의료보험에 진입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지금 추진하는 첩약의보에 적용할 수는 없는 말이다.

8. 한조시약사 및 한약사와의 문제
8-1. 한약분업을 한다면 상병코드와 구체적 처방이 있는 처방전을 발급해야 한다. 이 처방전에 따라 한약조제약사나 한약사가 처방을 조제해서 환자에게 줄 것이다. 그럼 한의사는 1명의 처방에 대해 어느 정도 급여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8-2. 분업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같은 파이를 놓고 한의사와 한조시약사, 한약사가 나눠 갖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약사에게 ‘진단또는 처방할 권리’를 인정하자는 이야기로 의약분업 전 상태의 암묵적인 인정이 된다. 약사는 의약분업 후 진단과 처방을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인식되었는데 이런 사회적 인식을 뒤흔들게 된다. 즉, 현재의 점유율과 관계 없이 약사들이 통합약사 등의 명목을 제시하며 본격적으로 진단(적응증 확인)과 처방을 하려고 나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첩약의보 논의에서 분업 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통합약사의 결정적 첫 단추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다.

8-3. 기타 약사와 얽혀 있는 문제들.
‘일반의약품 한약제제에 대한 권리에 양약사와 한약사 사이의 선을 그을 것인가 아니면 양의사와 한의사 사이에서 선을 흐리게 해서 회색영역을 넓혀 가려고 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이 사안에 연결이 되어 있다. 또한, 한조시약사와 한약사의 ‘100처방 임의 조제’, 양약사들의 한약제제 처방에 대한 문제, 보험 한약제제의 품질 및 제형 다변화, 신규 보험 한약제제 확대 등에 대한 지속적인 양약사들의 거부와 반대에 대한 돌파를 위한 전략 등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혹시 첩약의보를 성급하게 추진하려다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지 못 하고 여전히 숙제로 남겨 놓아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아무래도 놓기 힘들다. 첩약의보보다 중요한 문제고, 첩약의보를 진행하면서 반드시 해결하면서 진행해야 할 문제들이다.

9. 그래서 본인부담금은 얼마인가?
탕제 가격은 충분히 가격 저항을 극복할 정도로 낮아질 수 있는가? 일단 한약재 원자재 가격이 계속 상승 중이다. 재료의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은데, 과연 얼마까지 본인부담금을 낮출 수 있는가? 사실 십 여 년 이상 가격 동결 상태인 한약은 이미 거의 웬만한 물건들보다 저렴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싸서 사지 않겠다는 것은 ‘그 정도의 가격을 지불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에 대한 기대값이 낮다’는 의미다.

과연 탕제가 양약만큼, 혹은 일반의약품한약제제나 보험한약제제보다 싼 가격으로 제공될 수 있을까? 아니면 구매행위가 충분한 만족감을 줄 정도의 본인부담금은 과연 얼마인가? 사실 적절한 예측 자체가 없다. 계획 없는 시도라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오히려 약침, 일반의약품 한약제제 등이 훨씬 더 낮은 본인부담금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탕제를 급여화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써도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10. 미래 기술 개발의 원동력은 있는가?
보통 양방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후 수익률이 낮아지고, 보험이 적용 되면서 수익률이 더 낮아지면 이를 변형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예를 들어 개복수술 보험 급여화 후 나온 복강경 수술,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로봇 수술 같은 것들이다. 또 예전에 그냥 주사로 스테로이드를 뿌렸다면 요즘에는 내시경처럼 관을 넣고 스테로이드를 뿌린다. 하지만 이렇게 기존 방법을 우회한 기술은 비급여가 되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상승하는 치료비용을 효과적으로 억제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방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것이 포괄수가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까지 나온 첩약의보의 모든 모델은 ‘포괄수가제’에 근본한 모델이다. 따라서 탕제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고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고 더 좋은 추출 기술을 만들더라도 이에 대한 가치를 추가로 인정받을 방법은 전혀 없다. 더 나은 치료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비급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보험의 범위를 국소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삼, 홍삼’에 대해서만 급여화를 한다거나 하는 식이어야 한다. 또 위험한 한약재인 ‘부자’를 투여하는 위험부담이나 혹은 더 위험한 질병군의 환자에게 한약을 투여하는 위험에 대한 기술료 등이 개발될 수 있게 돼야 한다.

물론 이 10가지에 대해 찬성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 구체적으로 이야기 된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이제부터 이야기 하면 된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 안건이 나온 지 1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구체적으로 된 안건 하나 제시하지 않은 채, 첩약의보를 일단 찬성하고 보자는 대책 없는 결정에는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것이냐?’라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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