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평화진료단 일지(下)-정경진(청년한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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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평화진료단 일지(下)-정경진(청년한의사회장)
  • 승인 2003.07.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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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傷痕 딛고 우뚝 서기를…


□ 5월 19일 □

진료를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이다. 그동안 더위에 지치고 힘들어도 지금까지 아무 이상없이 버텨준 내 몸에 감사를 느낀다. 전쟁에 대한 상흔이 일상화되어버린 이라크 사람들을 볼 때 갑자기 우리의 과거사가 생각난다. 아홉 살 인생이라는 소설에서 보면 오직 보고 배운 것이 전쟁뿐이어서 놀이도 전쟁, 대화도 전쟁, 온통 전쟁을 빼면 할말이 없는 꼬마가 있는데 그 꼬마를 통하여 전쟁이 육체적 고통이외에도 영혼에 커다란 상처를 줌으로써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심하게 왜곡시키고 사회적, 정서적인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라크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절을 한다. 바쁜데 무슨 절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하루에 절하는 시간은 다 합쳐도 20분 밖에 안된다. 하루 20분을 투자해서 하루를 반성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신을 찬미하는 것, 이 얼마나 격조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라크에서는 적십자 마크가 적신월(赤新月) 모습이다. 붉은 색 십자가 우리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으나 여기에서는 붉은 색으로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기독교문화가 이렇게까지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는 사실말이다.

□ 5월 20일 □

오늘로서 진료소에서의 진료도 마치게 된다. 내일은 중증 장애인이 있는 시설을 돌아볼 참이다. 한의 진료의 인기는 참으로 대단했다. 1진으로 왔던 고수정 선생이 우석대 김성수 학우와 함께 다시 들어와 마지막까지 수고해주실 참이다.

짬을 내 한국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했다. 가족에게 편지도 쓰고 이슬람문명에 대한 책도 읽어보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슬람문명은 그렇게 작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세계문명사를 주도한 적이 있는 문명이었다.

인도나 중국에서 시작한 불교나 유교문명보다도 문명학적인 영향력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우리에게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믿는 신을 의심하지 않듯이 상대방이 믿는 신에 대하여도 존중하였다.

한 손에는 코란, 다른 손에는 칼이라고 알려진 무시무시한 종교인줄 알았던 이슬람교가 평화(앗살라 알레이쿰)를 숭상하는 종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에게는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다. 평화와 사랑, 둘 다 세계문명에 던진 종교적인 화두이다.

□ 5월 21일 □

내일이면 이곳 진료생활도 마감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으로 가기 전에 유은하 씨가 돌보고 있는 고아원에 가보기로 하였다. 바그다드에서 약 30분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이 고아원은 좋은 시설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97명의 어린아이와 장애인이 수용되어 있으며 의사를 포함한 관리인력이 무려 50여명에 이르는 유명한 고아원이다. 하지만 전쟁 때문에 봉급을 받지 못하게 되자 상당수 관리인원이 떠나버려 소수의 사람들만 출근해서 아이들을 씻기고 청소하는데 급급한 실정이었다.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담당자를 찾았으나 한명만이 우리를 협조할 뿐 다들 관심 밖이었다.

반전평화팀 배상현씨와 하은씨와 함께 키와 몸무게를 재고 어디 불편한 곳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다들 중증 장애인등이어서 말도 안 통할 뿐 아니라 행동이나 정서적인 장애로 진료하는데도 힘이 들었다. 가지고 간 사탕으로 발림해서 겨우 30여명정도 진료할 수 있었다.

고아원진료를 오전에 끝낸 후 오후에는 다시 진료소로 돌아와 마지막 진료 겸 정리를 했다. 원래 하루종일 고아원 진료를 계획하였는데 반전평화팀 사정으로 오전에 마무리를 했다.

이라크인 남자들은 무릎 통증환자가 많았다. 상당히 심한 수준이다. 어깨부터 발목까지 다 아프다고 하는 환자도 많았다. 통역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면 chief complain is shoulder pain, back pain, knee pain and ankle pain 이라고 하면 나는 ok 하면서 침을 놓기 시작한다. 신한격이나 노극방 그리고 상정방을 위주로 치료하였다. 약재는 청서익기탕류를 제일 많이 쓴 것 같다. 가지고 간 약이 한정된 관계다.

정말로 더위는 기운을 상하게 하는가 보다. 그리고 자극성있고 기름진 음식도 병을 악화시키는데 한 몫을 할 것이다.

그 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쟁이나 경제제재로 인해 이라크 민중들의 마음속에 생긴 화를 풀어주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책일 것이다. 따라서 의료는 사회체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의료인에게 주어지는 책무이기도 할 것이다.

진료 중간에 통역하는 치과의사의 말이 찡하다. “Germany is one, Yemen is one but Korea is two, I wish Korea is one.”

진료시간이 7시까지지만 언제나 8시가 되어야 끝이 난다. 오늘은 이준혁 선생과 나를 위한 환송식이 있었다.

□ 5월 22일 □

새벽 6시 시원한 바그다드의 바람을 뒤로 하며 그 동안 정들었던 ‘바그다드 동지회’와 작별을 했다. 그런데 택시 안에서 이준혁 선생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보기보다 여린 구석이 있어 보인다. 개인이 갖는 감흥을 뭐라 할 수 없어 가만이 창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부터 우리는 한국에서 이라크까지 온 길과 반대로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올 때는 침과 약재 때문에 어깨가 무거웠는데 갈 때는 이라크사람들의 해맑은 눈빛과 착한 마음과 그들의 기대를 담고 가기에 또 어깨가 무거워진다. 열흘간의 이라크 체험은 덥고 힘들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봉사했던 지역병원이 우리가 떠나고 나서도 계속 유지되었으면 하는 강한 소망을 갖고 바그다드를 뒤로 했다.

나중에 다시 방문했을 때 번듯한 병원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공항에 도착하는 내내 주위를 맴돌았다. 어느새 나의 눈 언저리도 젖어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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