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비평 - 「무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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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비평 - 「무경계」
  • 승인 2013.05.3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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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http://


세상만물은 모두 상호의존적인 관계론적 실체

켄 윌버  著
김철수 옮김
정신세계사 刊

언젠가부터 ‘부처님 오신 날’이 들어있는 달 전후에는 불교 관련 서적 몇 권을 읽고, 그 중 가장 흡족했던 책 하나를 소개하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시절인연에 걸맞은 행위일 거라는, 얼토당토않은 분별지(分別智)를 작동시킨 게지요. 여하튼 한 달여 전에도 사월 초파일을 염두에 두고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서 「숫타니파타(suttanipata)」 등을 구입했는데, 추천도서로는 「무경계(No Boundary)」를 선정했습니다. 불교와 관련된 서술은 매우 적었지만, ‘참나(眞我)’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했거든요.

「무경계」는 이른바 ‘세계 철학(world philosophy)’의 창시자로 불리는 켄 윌버(Ken Wilber)의 최근작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동서양의 철학·심리학·인류학·신비사상 등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데, 실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지은이가 불과 23세의 나이에 세계의 모든 지혜 전통을 총망라해서 저술했다는 ‘의식의 스펙트럼(The Spectrum of Consciousness)’을 다시금 요약한 것이라 합니다. 전문적인 용어를 가능한 한 일상적인 말로 쉽게 풀어씀과 동시에 방대한 분량을 최대한 축약했다는 뜻이겠지요.

책은 1장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해서 10장 ‘궁극의 의식상태’로 끝나는데, 모든 내용은 딱 한 마디로 귀결됩니다. ‘무경계’라는 책 제목처럼 “나와 전 우주와의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나/나 아님’의 경계를 구분하는 ‘정체성 수준’에 따라 페르소나 → 자아 → 전 유기체 → 합일의식 순으로 넓혀갈 수 있으며, 흔히 심리학의 영역에서 취급하던 단순상담·지지치료·정신분석·인지치료·게슈탈트·실존분석·여러 종교의 신비사상 등은 각각의 수준에 따른 맞춤대응임을 일목요연한 도표로써 제시해 놓았으니까요.

‘범아일여(梵我一如)’, 즉 “내가 곧 우주”임을 깨닫게 만드는 서론 부분을 넘어서면, 이후의 내용들은 거의 보너스입니다. 가령 “현대 물리학자들은 실재란 오직 대극(對極)이 합일된 상태로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구절을 마주칠 때면 ‘태극은 음양의 합일체’임을 방긋 미소와 함께 긍정하면 되고, “우주 내의 모든 사건·사물은 그것 이외의 모든 사건·사물들과 상호의존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문구와 맞닥뜨릴 때면, ‘세상만물이 모두 상호의존적인 관계론적 실체’라는 한의학적·생태학적 프레임을 곱씹으면 되며, “기억으로서의 과거와 예견으로서의 미래가 모두 현재의 사실이다”는 글귀를 접할 때면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history)이고, 내일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mistery)이며, 오늘이야말로 축복 가득한 선물(present)이다”는 사실을 재삼 직시하면 되니까요.

보살(菩薩)의 서원(誓願)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은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한의학의 지혜로 환자 치료에 매진해야 하기 때문인데, 환자가 곧 내 자신이라는 ‘무경계’의 수준까지 다다른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습니다. (값 1만5000원)

안세영 /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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