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170) - 朴千來 (1916~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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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170) - 朴千來 (1916~2005)
  • 승인 2013.03.2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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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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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한의사회장으로 醫功을 세운 한의사

경상남도 한의사회장으로 醫功을 세운 한의사 경상남도 한의사회 회장을 역임한 朴千來 선생은 일제 강점기 침사와 구사로 활동했다. 20대에 그는 일본에서 이미 유명하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大阪 明治鍼灸學校, 大阪接骨專門學校에서 수학하였고, 大阪中河內郡에서 辰巳鍼灸院을 自營하여 일본인들을 치료하여 이름을 떨쳤다. 해방이 됨과 동시에 귀국하여 침사와 구사로 활동하다가 1952년 한의사제도가 만들어진 후 잠시 동안 한의사검정고시가 시행되었을 때 고시에 합격하여 한의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8년 동방의학 제4권 제1호에 나오는 박천래 선생 취재 기사.
제주시 출신으로 겸손하고 학구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박 회장은 온고지신을 기본 정신으로 한의학의 현대화와 학계 조직발전에 전심전력하였다. 그는 부산에서 동성한의원을 개원하여 운영하면서 학구적인 임상가로서 활동하였다. 1952년 한의사회의 결성을 준비할 때 정원희와 함께 회칙의 초안을 만들었고, 이우룡 회장을 보필하여 감사로 활동하였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당시 한의계의 모범으로 평가되었다. 부산 피난시절 중앙회의 활동은 이후 서울로 환도한 후 한의사회 조직의 밑거름이 되었다.

 

1958년 「東方醫藥」제4권 제1호에 나오는 박 회장과의 인터뷰 기사에서는 ‘二十代弱冠時節부터 한의학계발전을 위하여 싸우는 醫功者’라고 평가하고 있다. 박 회장은 醫術을 仁術로 여기고 봉사하고 있었으며, 특히 심신수양을 위해 柔道를 연마하여 공인 4단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5남매를 가진 가장으로서 온화한 가정을 꾸렸으며 취미는 영화감상과 고적, 사찰 유람 등이었다고 한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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