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오래된 것들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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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오래된 것들은 아름답다
  • 승인 2013.02.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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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http://


여행을 통해 발견한 건축과 삶에 대한 사유

“……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 /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

▲ 승효상 著컬처그라퍼 刊
박기평, 아니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란 뜻의 필명 박노해 님의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란 시의 일부분입니다. 어떤가요? 오래된 것이 꼭 한의학을 일컫는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습니까?
건축가 승효상 님의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지난 연말에 구독했습니다. 대선 이후 멘붕 상태에 빠져 신문·방송과는 일체 절연하고, 대신 허탈한 마음을 달래려 인터넷 서점을 싸돌아다니던 중 눈길을 끈 제목의 책이었거든요. 미리보기를 클릭해서 몇 장 훑어본 뒤 곧장 주문했고, 배송 받은 당일 완독했는데, 깊은 위로와 감동은 한 달여가 지나도록 전혀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저자의 건축 철학이 한 땀 한 땀 깊게 아린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건축 설계란 우리네 삶을 조직하는 일이므로 건축은 곧 삶에 관한 이야기라는 관점을 지닌 지은이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마주했던 건축과 그 건축이 이루는 삶의 풍경들을 기록한 책이지요. 이제껏 저는 건축을 공학이나 예술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여행길에서 유명 건축물과 조우할 때면 ‘인증샷’이라며 그 건축물을 배경 삼아 그저 인물 사진 찍기에 바빴었는데(*-_-*), 건축의 본질은 인문학이라는 것입니다.
책은 박노해 님의 시를 서시의 형태로 모두에 놓은 뒤 총 25개의 산문들이 이어지는 양식으로 구성됩니다. 승효상 님이 국내외를 여행하며 인상 깊게 조우했던 여러 건축물들 - 종묘정전(宗廟正殿)·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독락당(獨樂堂)·샤르트르(Chartres)성당·소쇄원(瀟灑園)·르토로네(Le Thoronet) 수도원 등 - 의 사진을 곁들이면서 이들 건축에 얽힌 사람들 삶의 무늬[人文]들을 유려한 필치로 알려주는 것이지요. 저는 모든 글들이 다 좋았지만, 특히 루이스 칸(Louis Kahn)이 설계했다는 소크 연구소 부분 - “‘비움’, 이 용어는 이제 서양의 현대건축에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건축의 키워드가 되어 있지만, 이는 본디 우리 선조들의 상용어였으며 우리의 옛 도시와 건축의 바탕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비움은 추방해야 할 구악(舊惡)이 되었고, 채우기에 몰두한 나머지 우리 도시는 악다구니하는 한갓 조형물과 건조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우리의 삶과 공동체는 그래서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에서 더 많은 떨림을 겪었습니다. 뭐 한의사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기나긴 역사의 숨결을 머금은 오래된 것은 절대 ‘헌’ 것이 아닙니다. ‘헌’이라는 관형사는 ‘오래되어 성하지 않고 낡은’이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서(古書)를 헌 책이라 부르고, 집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깡그리 밀어버리겠다는 발상은 선대 인류의 문명을 성하지 않고 낡은 것으로만 간주하는 지독히 반문명적이고 반지성적인 생각이잖습니까?
확인사살 차원에서, 지난 설 연휴에 부암동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노해 의 ‘티베트 사진전’에 다녀왔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값 1만 3800원)

 

안세영 /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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